리지 경제학

그림 이야기

생방송서 찢긴 유고의 록 음반...뉴 파르티잔은 왜 군가를 불렀나

비옐로 두그메의 70만 장 복고 록...내전의 총성에 묻힌 "형제애"

리지

뉴 파르티잔2분

Illustration by Gemini

1987년 발칸반도의 사회주의 연방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 텔레비전 음악 방송에서 한 평론가가 음반 재킷을 찢었다. 카메라 앞에서 찢어진 음반은 당시 전국을 흔들던 록 밴드 비옐로 두그메의 신보였다. 평론가는 낡은 국가 선전물을 록에 덧씌운 상업적 키치라고 비판했다. 방송사 밖에서 소식을 들은 밴드의 리더이자 작곡가 고란 브레고비치는 거세게 반발했다.

논란이 된 뉴 파르티잔(New Partisans)은 1980년대 중반 사라예보 록 음악가들이 연방 분열을 막고 단결을 호소하려 일으킨 대중음악 흐름이다. 티토 사망 뒤 연방은 외채와 민족 갈등으로 흔들렸다. 청년 음악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파르티잔 항전 기억과 "형제애와 통일" 구호를 록과 민속 선율에 결합해 연방의 전성기를 되살렸다.

비옐로 두그메가 유고슬라비아 국가를 편곡해 실은 음반은 수십만 장 팔려 나갔다. 이 열기를 이어받은 청년들이 결성한 신예 록 밴드 플라비 오르케스타르는 비틀스 음반을 패러디해 역사 인물들을 표지에 올렸다. 단원들은 무대에서 군화와 파르티잔 양말을 신고 인터내셔널가를 연주했다. 이 데뷔 음반은 유고 대중음악 사상 최다 판매 기록을 세웠다.

1986년 유고슬라비아 록 밴드 비옐로 두그메. 사진 밀로라드 차카르디치, CC BY-SA 4.0, 위키피디아

이 흐름이 정점에 달했던 1986년 비옐로 두그메는 70만 장을 판매한 음반 노랫말에 키릴 문자와 라틴 문자를 나란히 실었다. 보컬 디노 메를린이 이끈 사라예보의 신예 록 밴드 메를린도 음반 앞면에 마릴린 먼로를, 뒷면에는 파르티잔 투사 밀랴 마린의 사진을 넣었다. 연방의 장래를 불안해하던 시민들은 복고풍 애국주의와 친숙한 민속 가락에 호응했다. 하지만 문화계 일각에서는 체제 선전을 본뜬 상술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파르티잔 투사 밀랴 마린을 찍은 사진 "코자라의 여인". 사진 조르주 스크리긴, 위키피디아

영화감독 에밀 쿠스투리카는 잡지 기고문에서 이 음악들이 록을 관제 사업으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다. 비평가들은 부유한 록 스타들이 기득권을 지키려 낡은 구호 뒤로 숨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밴드들이 노래한 순수한 혁명과 파르티잔식 사랑은 위태로운 경제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 대중의 열기도 빠르게 식었다.

결국 이 흐름은 급격히 무너졌다. 플라비 오르케스타르의 후속 음반은 판매 부진을 겪었고 밴드는 활동을 중단했다. 이 무렵 크로아티아 순회공연에 나선 비옐로 두그메는 연방의 단결을 노래하다 관객들의 야유를 받았다. 공연은 그대로 중단됐고 연방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내전으로 해체됐다.

음악 평론가가 생방송에서 찢었던 비옐로 두그메의 음반은 훗날 유고슬라비아 대중음악 명반 목록의 한 자리에 올랐다. 이 음반을 낸 유고슬라비아 연방은 지도에서 사라졌지만, 이들이 섞어 놓은 발칸 민속 가락과 록 사운드는 오늘날 발칸 전역의 클럽과 식당을 채우는 댄스 장르 터보포크의 원류가 됐다. 사라예보 바슈차르시야 골목의 기념품 가판대에는 군모를 쓴 파르티잔 티셔츠가 여전히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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