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할리우드 간판을 빌려 사막에 올린 글자...토착 미래주의의 시선
백인 정착민의 침략을 종말의 역사로 기록...사막의 거대 간판과 게임으로 되찾은 미래

서구 공상과학(SF)에서 외계인의 침략과 문명의 멸망은 미래의 공포로 그려진다. 그러나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그 종말은 이미 500년 전 대륙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들은 당시 백인 정착민의 침략과 전염병, 강제 이주로 삶의 터전이 무너진 고통을 몸소 겪었다.
토착 미래주의(Indigenous futurisms)는 원주민의 시선에서 미래와 기술을 새롭게 그리는 예술 운동이다. 포틀랜드주립대에서 원주민학을 연구하는 그레이스 딜런 교수가 2012년 앤솔러지 "구름 속을 걷다"를 펴내며 이 흐름을 정립했다. 그레이스 딜런 교수는 공상과학의 상상력을 빌려 식민 지배의 상처를 직시하고 빼앗긴 문화적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토착 미래주의의 밑바탕에는 서구의 선형적 시간관을 거스르는 고유한 철학이 흐른다. 아니시나베족의 말인 "비스카비양(biskaabiiyang)"은 조상의 뿌리로 돌아가 과거, 현재, 미래를 한자리에 겹쳐 보는 순환적 태도를 뜻한다. 브라질 원주민 래퍼 쿠누미 MC 역시 "원주민의 진보는 문화를 보존하는 것이며, 현재를 살기 위해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을 이어받아 원주민 화가들은 대중문화가 원주민 문화를 무단으로 소비해 온 방식을 거침없이 공격했다. 나바호족 화가인 라이언 싱어는 영화 "스타워즈"의 레아 공주 머리 모양이 호피족 미혼 여성의 전통 양식이라는 점을 포착했다. 라이언 싱어 화가는 전통 모포를 두른 레아 공주가 관객을 향해 소총을 겨누며 부족의 흙집을 지키는 그림을 그려 서구 상업 영화가 가볍게 소비하던 이미지를 정면으로 맞받았다.
사막에서도 비슷한 전복이 일어났다. 틀링깃족 출신 설치미술가인 니컬러스 갈라닌은 캘리포니아 사막에 대형 조형물을 설치했다. 갈라닌 작가는 백인 영화 산업을 상징하는 할리우드 간판 글자체를 빌렸다. 사막 능선 위에 거대한 철제 구조물로 "인디언의 땅(INDIAN LAND)"이라는 문구를 올렸다. 원주민 영토를 휴양지로 삼던 정착민 사회의 풍경을 단숨에 역사적 투쟁의 현장으로 바꿔 놓은 작품이었다.

이러한 저항은 가상공간으로도 이어졌다. 호주 원주민 법학자이자 예술가인 앰벌린 퀘이물리나는 인공지능과 토착 철학의 결합을 시도했다. 앰벌린 퀘이물리나 작가는 조상들의 구전 전통과 생태 지혜를 현대 인공지능 알고리즘과 연결하는 시각 예술을 발표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부족의 고유한 세계관을 보존하고 미래로 확장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현재 토착 미래주의의 조형 언어는 세계 주류 미술관과 영화 산업의 중심부로 들어왔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미국관에서는 원주민 예술가 제프리 깁슨이 전통 비즈 공예와 다채로운 색채를 결합한 전시를 열었다. 영화 "블랙 팬서"에 등장하는 가상의 해저 왕국인 탈로칸은 마야 문명의 문양을 스크린에 되살렸다. 북미 원주민 개발자들은 환경 파괴에 맞서는 비디오 게임을 만들었다. 500년 전 종말을 통과한 이들의 시각 언어가 현대 문명의 풍경을 채우고 있다.
이 글이 어땠나요?
눌러 주시면 다음 글을 쓸 때 소중한 참고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