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그림 이야기

아프리카 가면과 피카소를 나란히 건 전시...이름은 한쪽 캡션에만

선원근법 없는 윤곽과 장식 무늬만 가져간 원시주의...1984년 뉴욕 전시가 남긴 물음

리지

원시주의3분

1984년 뉴욕 현대미술관은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의 가면을 20세기 회화 옆에 나란히 걸었다. 전시 이름은 "20세기 미술의 원시주의: 부족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의 친연성"이었다. 전시를 기획한 이 미술관의 윌리엄 루빈은 부족 미술품 그 자체보다 서구의 현대 미술가들이 그것을 "발견"한 방식에 관심이 있다고 도록에 적었다.

원시주의는 서구 미술가가 원시적이라고 여긴 시대와 장소와 사람의 경험을 그대로 따라 그리거나 다시 만들어 보려는 양식이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사이 유럽 화가들이 만든 양식으로, 식민 지배가 이어지던 그 시기에 이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의 미술에서 도시 문명에는 없다고 본 더 깊고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을 찾으려 했다. 원시 사회가 도시 문명보다 더 나은 도덕을 지녔다는 생각이 그 바탕에 있었다. 유럽 화가들이 그 미술에서 가져온 것은 목록으로 정리된다. 선원근법이 없는 화면, 단순한 윤곽선, 변형된 형상, 되풀이되는 장식 무늬다. 그 물건들은 식민지에서 거둔 수집품으로 유럽에 들어왔다. 목록에 만든 사람의 이름은 없었다.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은 유럽의 도시를 떠나 남태평양의 프랑스 식민지 타히티에서 살며 그곳의 이미지를 유화에 담았다. 그는 자기 그림이 타히티 사회를 기린 것이고 프랑스 식민 지배에 맞서 타히티를 옹호한 것이라고 말했다. 20세기 후반의 페미니즘 비평은 그가 타히티에서 미성년 첩을 뒀다는 사실을 들어 그 말을 인정하지 않았다.

폴 고갱, 죽은 이의 영혼이 지켜본다(1892). 위키피디아

고갱이 죽은 뒤 파리에서 그의 회고전이 두 번 열렸다. 마티스와 드랭과 블라맹크 같은 야수파 화가들은 이 회고전을 보고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의 미술로 눈을 돌렸다. 스페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이베리아 조각과 아프리카 가면을 살펴봤다. 그리고 1907년 "아비뇽의 여인들"을 그려 큐비즘을 열었다. 그 화면 오른쪽의 두 인물에 아프리카 팡족의 가면 양식이 남아 있다.

루브르가 소장한 팡족 가면. 깎은 사람의 이름은 남아 있지 않다. 위키피디아

식민지를 겪은 쪽의 화가들도 같은 향수를 그렸다. 대서양 양쪽의 프랑스어권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1930년대에 일으킨 문예 운동 네그리튀드는 서구의 이성주의와 유럽의 식민 지배를 거부하며, 유럽인이 오기 전의 아프리카를 하나로 묶여 있던 황금시대로 그렸다. 파리에서 초현실주의자들과 어울렸던 쿠바 화가 비프레도 람은 "정글"에서 사탕수수 대궁 사이에 아프리카 모티프를 놓았다. 네그리튀드의 이상과 설탕 농장 노예제의 역사를 한 화면에 묶은 그림이다.

람의 그림에는 그린 사람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나란히 걸린 가면에는 그런 이름이 없었다. 비평가들은 그 나란히 걸기가 부족 미술품에 "모더니즘 아방가르드의 각주나 부록 이상이 못 되는" 자리를 줬다고 봤다. 전시는 방을 넷으로 나눴다. 그중 한 방의 이름이 친연성이었다.

유럽 밖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의 미술, 곧 비서구 미술을 모아 둔 파리의 케브랑리 미술관은 2017년 "피카소 프리미티프"를 열었다. 안내문은 피카소의 작품과 "그에 못지않게 풍부한 비서구 미술가들"의 작품 사이의 대화를 원한다고 밝혔다. 이듬해 몬트리올 미술관은 그 작품 300점을 빌려와 다시 걸며 피카소와 "익명의 가면"을 어떻게 같은 평면에 걸 수 있느냐고 물었다. 1984년 뉴욕 전시로부터 33년 사이에 미술관은 이 물건들을 부족 미술품에서 비서구 미술가의 작품으로 고쳐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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