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고대 기록엔 제비꽃이었다...알마타데마가 장미로 바꾼 로마의 퇴폐
장미 철 지난 영국에서 4개월간 남프랑스 꽃잎 공수...중립적이던 단어 퇴폐, 19세기 화폭에서 뜻이 굳어
1888년 런던의 한 작업실로 남프랑스에서 장미 꽃잎을 담은 상자가 매주 왔다. 영국에서는 장미가 피는 철이 지나 꽃을 구할 수 없었다. 화가 로런스 알마타데마는 이 꽃잎을 받아 쓰며 4개월 동안 화면을 채웠다고 한다.
퇴폐는 한 사회가 풍요의 끝에서 안으로 무너져 간다고 보는 생각이다. 로마가 그 표본으로 꼽히지만 오늘 우리가 떠올리는 그 장면은 고대 기록에 없다. 19세기 유럽의 화가와 비평가들이 만들어 냈다.
알마타데마는 3세기 로마 황제 엘라가발루스의 잔치 장면을 그렸다. 고대 기록인 아우구스타 역사서에 그 장면이 있다. 황제가 연회장의 뒤집히는 천장을 열어 손님들을 꽃에 묻었고 기어 나오지 못한 이들은 숨졌다고 전한다. 다만 아우구스타 역사서가 적은 꽃은 장미가 아니었다. "제비꽃과 다른 꽃들"이었고 일화 자체도 지어낸 것으로 본다.
알마타데마는 그 꽃을 장미로 바꿨다. 후대 연구자들은 장면의 진위가 화가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고 짚는다. 이 그림의 매력은 후기 로마를 즐겁고 부풀려 놓은 환상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 그림을 주문한 존 에어드는 화가에게 4,000파운드를 치렀다.

알마타데마가 이 그림에서 바꾼 것은 꽃 한 종류만이 아니다. 알마타데마를 포함한 19세기 유럽 화가들은 후기 로마의 귀족을 사치와 무기력, 성적 방종의 장면으로 되풀이해 그렸다. 그 되풀이의 원형은 토마 쿠튀르가 1847년 내놓은 가로 7.7m의 대작이었다. 오늘 로마의 멸망을 떠올릴 때 함께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그 모양은 쿠튀르 이후 그 시절 화가들이 화폭에 그려 낸 것이다.

화가들이 화폭에서 장면을 굳히던 이 무렵 단어의 뜻도 함께 굳어졌다. 중세 라틴어 dēcadentia는 쇠락이나 감소를 뜻하는 중립적인 말이었다. 이 말이 16세기 프랑스어를 거쳐 영어에 들어왔다. 19세기 말 유럽에는 사회 퇴화론이라는 학설이 있었다. 인간과 사회가 한번 나빠지면 되돌릴 수 없다고 본 이 학설이 붙으면서 지금의 뜻을 얻었다. 비평가들은 이 말을 빅토르 위고를 공격하는 욕으로 썼다. 다음 세대 작가들은 그 말을 자부심의 표지로 삼았다. 이들은 과거의 뒤틀린 인물이 지닌 권위에 끌렸다. 화폭에 오른 엘라가발루스는 그 세대의 우상이 됐다.
알마타데마가 1912년 세상을 떠난 뒤 그의 그림은 유행에서 멀어졌다. "엘라가발루스의 장미"는 4,000파운드를 받고 그린 그림이다. 1935년에는 483기니, 500파운드 남짓한 값에 팔렸다. 1960년 경매에서는 살 사람이 없었다. 이 그림은 1993년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서 150만파운드에 팔렸다.
그림 가격이 되돌아오는 사이 단어도 다시 쓰였다. 역사학자 자크 바전은 2000년 책에서 퇴폐를 "기술적 표찰"이라고 설명했다. 예술과 삶의 형식이 고갈되고 "제도가 고통스럽게 작동하는" 시대를 가리켰다. 2020년 미국에서 나온 책 한 권은 그 진단을 21세기 서구에 적용했다. 물질적 번영과 기술 발전이 높은 수준에 이른 상태를 "경제 정체와 제도 부식, 문화적·지적 소진"으로 규정했다. 남프랑스 장미가 깔린 그 화면은 2024년 9월부터 2025년 1월까지 마드리드 시청사 전시장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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