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바닥에 닿지 않고 멈춘 기둥...해체주의가 비틀어 세운 현대 건축의 불안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규칙 깨뜨려...티타늄 곡면과 비대칭으로 일상에 자리 잡아

오하이오 웩스너 예술센터 계단을 오르는 방문객은 머리 위에서 낯선 기둥 하나를 만난다. 천장에서 곧게 뻗어 내려온 하얀 사각 기둥이다. 이 기둥은 계단 바닥에 닿기 직전 허공에서 끊겨 멈춰 섰다.
기둥은 본래 위층 하중을 받아 땅으로 전달하는 구조물이다.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먼은 1989년 완성한 이 건물에서 기둥의 역할을 없앴다. 허공에 매달린 기둥은 보행자에게 위태로운 긴장감을 준다. 이러한 파격의 바탕에는 해체주의가 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근대 건축 원칙을 뒤흔들었다. 도시의 긴장을 드러내려는 1980년대 건축가들의 시도였다.
이러한 파격을 선보인 전시가 1988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렸다. 건축가 필립 존슨과 마크 위글리가 기획한 ‘해체주의 건축전’이었다. 전시장에는 아이젠먼과 프랭크 게리,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작품이 걸렸다.
전시작은 모두 근대 건축 원칙인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를 깨뜨리고 비튼 도면과 모형으로 채워졌다. 참여 건축가들은 하나의 사조로 묶이기를 꺼렸다. 이들 가운데 게리는 훗날 “미친 공간은 대단하지만 철학이니 뭐니 하는 나머지는 헛소리”라고 일축했다.
이러한 거부에도 ‘해체주의’라는 이름은 미술계에 확고히 자리 잡았다. 1920년대 러시아 구성주의의 어긋난 선과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탈구축 개념이 이 이름 아래 모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건물 위에 신전 박공을 장식으로 얹을 때 해체주의 건축가들은 건물의 뼈대를 해체했다. 표면을 비틀어 ‘통제된 혼돈’을 구현했다.

종이 위의 스케치에 머물던 형상은 컴퓨터 설계 기술(CAD)을 만나 현실이 됐다. 게리는 항공기를 설계하던 프로그램을 도입해 티타늄 판을 비틀어 외벽에 둘렀다. 1997년 스페인에 들어선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그 결실이었다. 이 미술관은 3만3,000장의 티타늄 판을 이어 붙여 쇠락하던 도시를 되살렸다.

파격적인 조형 뒤편에는 비판도 뒤따랐다. 영국 건축사가 케네스 프램프턴은 해체주의를 “엘리트주의적이고 현실과 단절됐다”고 비판했다. 건축이론가 니코스 살링가로스는 도시를 침범하는 “바이러스 같은 표현”이라고 날을 세웠다. 안정감 대신 불안을 안긴다는 지적도 나왔다.
도시의 불안을 드러낸 조형은 현대 시각 문화 전반에 자리 잡았다. 반듯한 상자를 벗어난 파편과 곡면은 스포츠카의 공기 흡입구, 날렵하게 꺾인 러닝화 밑창, SF 영화 속 마천루로 번져 나갔다. 미술관에서 시작한 실험은 이제 보행자가 매일 마주치는 일상의 풍경이 됐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대표적이다. 자하 하디드는 4만5,133장의 서로 다른 알루미늄 외장 패널로 이 비정형 곡면을 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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