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벨라루스 성화에 남은 표트르 옙세예비치의 이름
백악과 아교로 만든 바탕층의 식물 부조와 금박...종교 도상 속 민속 복식과 생활용품

성인과 종교적 장면을 그린 벨라루스 성화 가운데 성모 마리아의 탄생을 그린 1649년작 "성모 탄생"의 오른쪽 아래에는 표트르 옙세예비치의 이름이 흰 물감으로 적혀 있다. 벨라루스 모길료프의 교회에서 발견된 이 성화에는 제작 연도와 이름이 함께 적혀 있다. 다만 이름의 주인이 화가인지 후원자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림 속 성모의 어머니 안나는 침대에 앉아 베개에 등을 기대고 있다. 곁에서 안나의 시중을 드는 여성들은 그릇을 들고 있으며 아래쪽에서는 여인들이 아기 마리아를 돌보고 있다. 안나의 침상과 시중드는 여인들, 아기 목욕은 기존 성모 탄생 도상에도 등장하는 요소다. 이 작품 속 여성들이 쓴 자수가 놓인 민속 머리쓰개와 베개의 장식, 도자기와 나무 그릇, 나무 침대에서는 지역 생활의 세부를 확인할 수 있다.
벨라루스 성화는 비잔티움 전통을 바탕으로 서유럽 르네상스의 표현법을 받아들였다. 지역 화가들은 성인의 몸과 옷에 명암을 넣고 종교적 장면에 생활의 세부를 묘사했다. 전통적인 도상과 새로운 표현은 한 화면에 함께 나타났다. 정교회와 가톨릭 전통 사이에도 교류가 있었으며 동방 전례를 유지하면서 교황의 권위를 인정한 합동 교회의 성화에도 서유럽 회화의 표현이 나타났다.
화가들은 피나무 등의 판재 위에 백악과 아교를 섞은 재료로 바탕층을 만들었다. 화가들은 이 바탕층을 조각하거나 성형해 표면에 무늬가 도드라지는 부조로 식물 장식을 만들었고 조각한 배경에 금을 입히기도 했다. 부조의 높낮이와 금박이 한 표면에 함께 놓이면서 무늬에 입체감과 빛의 반사 효과가 나타났다. 이탈리아 직물 등의 식물 문양은 성화 배경의 장식에도 활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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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루츠크 지역에서 나온 성화 "성 파라스케바"에서는 이러한 조형 변화가 뚜렷하다. 16세기 중반에서 후반의 작품으로 소개되는 이 그림의 작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화가는 1538년 베네치아에서 인쇄된 서적의 판화를 본떠 인물의 비례와 윤곽을 유지하면서 성녀의 옷자락에 부드러운 명암을 넣어 몸의 부피를 표현했다. 화가는 성녀의 등 뒤를 식물 부조로 채우고 배경과 성녀의 머리 둘레를 감싼 후광에는 금을 입혔다.

17세기에는 성화 속 일부 인물이 세속의 옷을 입었고, 18세기에는 민중 미술의 요소가 더 두드러졌다. 성화 속 종교적 장면에는 풍경과 정물, 생활 장면의 묘사가 포함됐다. 서적 판화를 차용하면서 기존 도상의 구성과 어긋난 사례도 나타났다.
벨라루스 브레스트 지역의 벨리코예 말레셰프에서 나온 "삼위일체" 성화에서는 판화에서 가져온 도상이 거울상처럼 좌우로 뒤바뀌었다. 천사들은 통상적인 축복의 오른손과 지팡이를 든 왼손이 뒤바뀌어 왼손으로 축복하고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쥐고 있다. 이처럼 기존 도상의 구성 규칙에서 벗어난 작품들은 성직자들의 반발을 샀다. 공식 교회는 비정전적 작품의 유포를 금지하려 했지만 이를 생활 요소가 담긴 모든 성화에 대한 금지로 해석할 수는 없다.
18세기 말에는 성인의 얼굴과 손을 물감으로 그리고 배경과 옷을 은판이나 금을 입힌 장식으로 덮는 경향이 강해졌다. 벨라루스 성화는 이 무렵부터 독자성을 점차 잃으며 쇠퇴했다.
오늘날 민스크의 "자베트" 공방은 교회와 가정에서 사용할 성화를 주문받아 제작한다. 이 공방이 공개한 제작 과정에는 백악과 아교로 바탕층을 만들고 장식의 윤곽을 새기거나 액체 바탕재로 무늬를 만든 뒤 금박을 입히는 방법이 소개돼 있다. 바탕층의 높낮이와 금박을 결합하는 기법은 현대 성화 제작에도 활용된다.
옛 벨라루스 성화의 장식을 재현한 작품도 있다. 자베트 공방은 벨라루스 국립미술관과 랴호프치 마을의 교회가 참여한 사업에서 말로리타 지역 화가의 1650년작 "성모 탄생"을 2016~2020년에 복제했다. 제작진은 원작의 외형과 함께 바탕층을 조각해 장식을 만드는 기법도 연구하고 재현했다. 완성된 복제작은 2020년 9월 민스크의 성령 대성당에서 신자들에게 공개된 뒤 랴호프치 마을의 교회로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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