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세상의 흐름

고금리 폭우 버텨낸 집값의 착시...정책금융 바닥나자 덮친 대출 절벽

2.1조달러 초과저축과 30년 고정의 잠김 효과 소진...정책대출로 버틴 한국도 대출절벽 직면

리지

주택 시장6분

Illustration by Gemini

아파트 단지 앞 부동산 중개업소 유리문 밖 우산꽂이에 투명 비닐우산 서너 자루가 꽂혀 있다. 빗물이 뚝뚝 떨어진다. 유리창 안에는 주택담보대출 상담 안내문이 걸려 있다. 중개인은 여전히 매수 문의 전화를 받는다. 밖에 비가 얼마나 쏟아지든 처마 밑에서 우산을 펴 든 사람에게는 빗소리가 아득하게 들린다.

기준금리가 5%포인트 넘게 뛰는 40년 만의 통화 긴축에도 집값은 떨어지지 않았다. 미국과 주요국의 주택 가격은 오히려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연방준비제도(Fed)가 연 0.25%였던 기준금리를 1년여 만에 5.50%까지 끌어올렸을 때 시장은 2008년 금융위기를 떠올렸다. 금리가 오르면 빚을 낸 가계가 무너지고 집값이 폭락하는 것이 금융의 오랜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금리가 오르자 변동금리로 돈을 빌린 차주들이 무너졌다. 원리금을 갚지 못해 집을 헐값에 매물로 던졌다. 경매 시장에 쏟아진 매물이 주택 가격을 30% 넘게 끌어내렸다. 은행들은 부실채권을 털어내느라 휘청거렸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면 주택 시장이 가장 먼저 식는다는 명제는 그 위기를 거치며 정설로 굳어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S&P 코어로직 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5%포인트 넘게 올린 뒤에도 2년 내내 올랐다. 역대 최고치를 거듭 새로 썼다. 전례 없는 고금리 속에서도 집값이 버텨내자 시장에서는 주택이 고물가를 이겨내는 궁극의 자산이라는 믿음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집값은 부동산 자산 자체의 힘으로 버텨낸 것이라 보기 어렵다. 가계가 머리 위에 받쳐 든 3개의 일회용 우산이 금리 인상의 충격을 가려주고 있었을 뿐이다. 밖에 선 사람은 비에 젖지 않았다. 머리 위에 우산을 받쳐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우산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 정부가 가계에 직접 뿌린 재난지원금과 소비 위축으로 축적된 막대한 초과 저축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팬데믹 발발 이후 1년 반 동안 미국 가계가 쌓아둔 초과 저축은 2조 1,000억달러에 달했다.

생활 물가가 뛰고 대출 금리가 올라도 가계는 통장의 뭉칫돈을 헐어 쓰며 이자를 갚아 나갔다. 지갑에 현금 여력이 남아 있는 차주는 대출 이자가 올랐다고 해서 집을 급매물로 던질 이유가 없었다. 가계의 누적 저축이 금리 인상의 1차 충격을 그대로 흡수했다.

두 번째 우산은 초저금리 시절에 묶어둔 30년 만기 고정금리 모기지였다. 미국 프레디맥 집계에 따르면 금리가 바닥을 쳤을 무렵 미국의 30년 만기 고정 모기지 금리는 연 2.65%까지 떨어졌다. 당시 집을 샀거나 대출을 갈아탄 차주의 80% 이상은 연 5% 미만, 60% 이상은 연 4% 미만의 금리를 30년 동안 보장받았다.

연 3% 대출을 쥐고 있는 집주인은 이사를 가거나 새집을 사면 연 7% 대출을 새로 받아야 했다. 이사를 포기하고 기존 집에 눌러앉는 이른바 "금리 잠김" 현상이 미국 전역을 뒤덮었다. 집을 사려는 수요도 줄었지만 시장에 나오는 매물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거래량이 반토막 난 상태에서 극소수의 매물만 비싼 가격에 거래됐다. 통계상의 집값 지수는 계속 올랐다. 파는 사람이 사라진 시장에서는 가격이 내려갈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다. 30년 고정금리가 만든 공급 절벽이 집값을 떠받치는 두 번째 우산이 됐다.

세 번째 우산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넘게 이어진 신규 주택 착공 부족이었다. 위기 당시 대규모 미분양으로 도산했던 주택 건설사들은 무리한 개발을 피했다. 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뛰면서 주택 공급은 만성적인 부족 상태에 머물렀다. 비가 쏟아져도 들어갈 집 자체가 모자라니 집값은 떠밀려 올라갔다.

문제는 이 3개의 우산이 일회용 소모품이었다는 점이다. 지금 이 우산들은 차례로 찢어지고 있다. 가계 저축이 가장 먼저 바닥을 드러냈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은 2조 1,000억달러에 달했던 미국 가계의 초과 저축이 재작년 상반기에 이미 소진됐다고 집계했다. 팬데믹이 남긴 현금 완충재가 사라졌다. 미국 가계의 저축률은 역사적 평균 아래로 떨어졌다. 신용카드와 자동차 대출 연체율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두 번째 우산이던 매물 잠김 효과도 한계에 다다랐다. 출산과 이직, 이혼처럼 삶의 궤적이 바뀌는 가계는 금리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이사를 영원히 미룰 수 없다. 리얼터닷컴 집계에 따르면 미국의 활성 주택 매물은 28개월 연속 늘었다. 시장에 매물이 쌓이기 시작하자 집주인들이 누리던 빗장 효과는 힘을 잃었다.

30년 고정금리라는 두터운 우산이 없던 나라들에서는 균열이 더 일찍,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변동금리 비중이 높은 호주, 5년마다 금리를 갱신해야 하는 캐나다와 영국에서는 차주들의 원리금 청구서가 40~50%씩 뛰었다. 고금리가 이어지자 가계는 소비를 줄이며 버텼다. 하지만 대출 갱신 시점이 돌아온 차주들이 늘어나며 주택 거래는 얼어붙었다.

한국으로 시선을 돌리면 상황은 한층 위태롭다. 한국 가계는 미국처럼 GDP의 10%에 달하는 현금성 초과 저축을 받아본 적도 없다. 30년 동안 금리를 묶어주는 순수 고정금리 대출도 없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0%를 웃돌며 세계 최상위권이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의 대부분은 5년만 지나면 금리를 다시 산정하는 주기형이거나 변동금리다.

그런데도 최근 2년 사이 한국의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다시 상승세를 탔던 까닭은 정부가 거대한 인공 우산을 씌워주었기 때문이다. 미국 가계가 민간의 저축과 30년 고정이라는 우산으로 버텼다면 한국은 정부가 공공 유동성을 직접 들이부어 금리의 충격을 차단했다.

정부는 40조원 규모의 특례보금자리론을 공급했다. 뒤이어 신생아 특례대출과 디딤돌 대출 같은 정책금융 파이프를 열었다. 시중은행 대출 금리가 연 4~5%로 뛸 때 정부는 연 1~2%대 정책자금을 시장에 쏟아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3.50%로 묶어둔 사이 정부가 금리의 전달 경로를 행정으로 가로막으며 가계가 빚을 더 내도록 길을 터준 것이다.

그 대가는 통계에 그대로 남았다. 한국은행이 10일 발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8월 가계대출은 월평균 4조 8,000억원씩 급증했다. 지난해 월평균 증가폭인 3조 2,000억원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한국은행은 수도권 집값 상승과 가계대출 증가로 금융 불안 위험이 커지고 있다며 일관된 대출 정책을 주문했다.

그러나 정부의 인공 우산도 마침내 찢어졌다. 가계대출이 다시 폭발하자 금융당국은 8·13 대책을 통해 5대 은행 연간 가계대출 증액 한도를 7조 1,127억원으로 늘려줬지만 이 여력은 불과 한 달 만에 바닥났다. 22일 금융권 집계에 따르면 17일 기준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약 652조 2,617억원으로 올해 관리 목표치를 1,790억원 초과했다.

증액 한도를 채운 은행들은 신규 대출 창구를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신용점수 900점 차주마저 대출 심사에서 밀려나는 대출 절벽이 나타났다. 9월 1일부터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에 가산금리를 1.2%포인트 얹는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시행되면서 대출 한도도 수천만원씩 줄어들었다. 정부가 씌워주던 우산이 접히자마자 거래 창구는 멈춰 섰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 인하에 들어갔다. 한국은행도 금리를 내리면 주택 시장이 다시 힘을 받을 것이라는 반론이 있다. 금리가 내려가면 차주의 이자 부담이 줄고 멈칫했던 매수세가 살아나리라는 기대다.

그러나 이 반론은 시장의 현실을 보지 못한 계산이다. 기준금리를 소폭 낮춘다고 해서 차주들이 체감하는 모기지 금리가 함께 내려오지 않는다. 미국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재정적자와 국채 발행 부담으로 인해 연 4% 안팎에 머물러 있다. 30년 모기지 금리도 여전히 연 6%대 중반에 갇혀 있다.

더욱이 주택 가격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는 가계가 감당할 수 있는 대출 총량이다. 은행들이 연간 총량을 채워 창구를 닫고 스트레스 DSR로 대출 상한선을 묶어둔 상태에서는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내려가더라도 개인이 빌릴 수 있는 돈의 크기는 늘어나지 않는다. 대출 총량이 묶여 있는 한 금리 인하는 차주의 대출 한도로 이어지지 못한다.

다음 분기에 독자가 지켜볼 지표는 호가나 거래량이 아니다.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과 법원에 접수되는 부동산 임의경매 건수다. 초과 저축이 바닥나고 정책금융이 닫힌 상태에서 가계가 소득만으로 고금리를 버텨낼 수 있는 기간은 보통 6개월에서 1년이다. 이 시간이 지나면 원리금을 감당하지 못한 매물이 경매 법정으로 밀려 나온다.

부동산 중개업소 처마 밑 우산꽂이에 꽂힌 얇은 비닐우산은 소나기 한 번을 피하려 편의점에서 급히 사 든 물건이다. 비가 그치지 않고 계절을 넘겨 쏟아지면 얇은 비닐은 찢어지고 쇠살은 휘어질 수밖에 없다.

팬데믹이 남긴 2조달러의 초과 저축과 정부가 들이부은 정책금융은 그런 일회용 우산이었다. 비가 계속 내리는 동안 우산이 비를 가려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우산살이 부러진 자리에서 드러나고 있다. 5대 은행은 1년 치 대출 한도를 채워 창구를 닫았다. 한국은행은 가계대출이 월 4조 8,000억원씩 불어나는 현실에 경고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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