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뒤의 숫자
대한극장 닫고 주유소 돌리는 세기상사...역합병과 재평가로 띄운 1900억
주유소 7곳과 스누피 카페로 채운 매출...지분 91% 잠긴 채 429억 자산재평가
서울 중구 퇴계로 212번지. 1958년 4월 문을 연 대한극장은 70밀리미터 대형 스크린을 걸고 영화 "벤허"를 상영하며 충무로 시대를 이끌었다. 세기상사는 66년 동안 이 극장을 운영해 온 상장사다.
하지만 멀티플렉스와 OTT에 밀려 적자가 쌓이자 세기상사는 2024년 9월 30일 극장 문을 닫았다. 당시 세기상사는 폐관 이유로 "영화 상영 사업의 지속적 적자 해소"를 들었다.
극장을 닫은 세기상사는 이제 영화로 돈을 벌지 않는다. 2021년 신설한 석유판매사업부를 통해 부산과 경남 일대 주유소 7곳을 운영한다. 올 상반기 매출 163억원 가운데 86.8%인 141억원을 주유소에서 거뒀다. 해운대와 서울 신세계 강남점의 "스누피 플레이스" 카페에서는 캐릭터 빵을 팔아 6억원을 보탰다.
대한극장 건물은 관객 참여형 공연 "슬립 노 모어"에 통째로 세를 줘 15억원 임대료를 받았다. 유서 깊은 극장이 주유소와 카페, 공연장 임대로 버티는 소매업체로 바뀌었다.
그런데 주식시장에 찍힌 시가총액은 이례적이다. 세기상사는 7년 연속 순손실을 냈고 지난 12개월 주당순손실은 508원이다. 올 상반기에도 6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하지만 19일 기준 시가총액은 1,926억원이다. 자본 245억원 대비 주가순자산비율(PBR)은 7.9배다. 주유소와 카페를 운영해 연간 300억원 안팎을 파는 적자 기업이 코스피에서 2,000억원에 육박하는 평가를 받는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주가를 끌어올린 동력은 지배구조 개편에서 나왔다. 세기상사는 지난달 8일 그룹 비상장 모회사 우양수산을 역흡수합병했다. 원래 597만주였던 발행주식에 신주 2,520만주가 얹히며 주식 수가 3,117만주로 다섯 배 넘게 늘었다.
우양수산 지분을 쥐고 있던 조영준 대표 일가의 지분율은 91.18%로 높아졌다. 일반 주주 지분은 8.8%에 그친다. 결손금 154억원이 쌓인 상장사에 모회사의 덩치를 얹으면서 시가총액이 단숨에 치솟았다.
재무제표 숫자를 바꾸려는 움직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세기상사는 18일 토지와 건물 등 장부가액 429억원 규모의 자산에 대해 자산재평가를 실시한다고 공시했다. 세기상사는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에 의거해 자산의 실질 가치를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1958년부터 보유해 온 충무로 대한극장 토지와 건물의 공정가치를 새로 올리면 평가 차액만큼 자본이 늘고 부채비율은 떨어진다. 영업 적자를 부동산 재평가로 덮는 전형적인 자산주의 방식이다.
1,926억원 시가총액에는 지분 91%가 잠겨 품절주가 된 유통 구조와 부동산 재평가 기대가 실려 있다. 하지만 주유소 유통 마진은 얇고 상반기 141억원의 기름을 팔아 남긴 이익은 미미하다.
합병으로 서류상 자본이 1,485억원으로 늘었다 해도 주력 사업의 현금 창출력 없이는 회계 처리만으로 한계에 부딪힌다. 재평가로 부풀린 자본을 영업손실이 다시 갉아먹기 시작할 때 하루 1억원도 거래되지 않는 얇은 호가 위에서 그 시가총액을 지켜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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