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주가 뒤의 숫자

통장 현금 1765억...멀티캠퍼스 시총 1369억의 역설

22년 연속 흑자에 24년 연속 배당...순현금보다 400억 밑도는 시가총액

리지

멀티캠퍼스2분

차입금 없이 현금 1,765억원을 쌓아둔 회사가 주식시장에서는 1,369억원에 거래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언주로에 본사를 둔 멀티캠퍼스 이야기다. 취업준비생에게는 외국어 말하기 능력을 평가하는 오픽(OPIc) 주관사로, 직장인에게는 기업 직무 교육과 삼성청년SW아카데미 운영사로 알려져 있다. 매출의 76%를 기업 교육에서, 24%를 외국어 평가에서 올린다.

멀티캠퍼스는 삼성그룹이 계열사 임직원의 직무 교육을 전담하기 위해 2000년 5월 크레듀라는 사명으로 설립한 기업교육 전문기업이다. 2016년 삼성SDS의 교육사업을 넘겨받아 사명을 바꾼 뒤 외부 기업 교육과 외국어 평가로 사업을 넓혀 왔다.

하지만 주가는 바닥을 맴돈다. 2019년 4월 5만 6,000원에 달했던 주가는 지난 6월 2만 1,500원까지 밀렸다. 지금도 2만 3,100원에 머물러 있다. 삼성SDS가 지분 62.4%를 쥔 최대주주이고 삼성 계열사 매출 비중도 53%에 달한다. 하지만 고객사들의 예산 축소로 연간 매출은 2023년 3,586억원에서 지난해 3,308억원으로 8% 줄었다. 사내 교육 시장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주가를 눌렀다.

지난 5월 공시된 1분기 실적은 불안을 키웠다. 매출은 807억원으로 6% 늘었으나 영업이익은 6억원에 그치며 86% 급감했다. 시장은 수익성이 악화했다고 봤다.

하지만 반기보고서 주석의 비용 명세를 보면 사정이 다르다. 1분기 인건비는 248억원으로 35억원 늘었고 외부 강사와 교육 콘텐츠 개발에 지급하는 외주비는 113억원으로 33억원 증가했다. 두 항목에서만 68억원의 비용이 더 들었다. 이 비용은 체질 전환을 위한 선제 투자였다.

산업계는 AI를 배우는 단계를 넘어 업무에 심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글로벌 AI 기업 앤트로픽도 사내 R&D의 26%를 AI가 담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멀티캠퍼스는 사내에 AX러닝혁신센터를 세우고 에이전트 설계와 실무 해커톤 교육에 자금을 투입했다. 사업보고서에서도 "고객사 맞춤형 서비스의 영업활동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선제 투자가 마무리되자 실적은 반등했다. 2분기 매출은 876억원으로 늘었고 영업이익은 88억원으로 지난해 2분기 수준을 회복했다.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 같은 잠재 매물은 단 한 주도 없다. 무형자산 284억원 가운데 미국 오픽 주관사 LTI와 세리시이오 영업권은 144억원(50.7%)에 불과하다. 차입금은 0원이며 리스부채 289억원을 모두 갚아도 1,476억원의 순현금이 남는다.

멀티캠퍼스 주가 (단위=원, 월봉 종가) 1분기 실적 충격 30,000 40,000 50,000 60,000 2020 2022 2024 2026 47,050 23,200
월봉 종가. 붉은 띠는 1분기 영업이익 급감 공시 이후 주가가 2만 1,500원까지 밀린 구간이다.

멀티캠퍼스는 지난 22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흑자를 냈다. 결산 배당 역시 24년 연속으로 이어왔다. 지난해 주당 1,350원을 지급해 시가배당률은 5.8%다. PER은 5.2배이고 PBR은 0.58배에 그친다. 주식시장은 회사가 쥔 순현금 1,765억원에도 못 미치는 1,369억원에 전체 기업가치를 묶어뒀다. 매년 200억원 안팎을 버는 본업을 마이너스로 평가한 셈이다.

1,369억원의 시가총액에는 AI가 기업 교육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제가 실려 있다. 하지만 업무 전체를 AI 중심으로 다시 짜는 AX 전환은 전 임직원을 다시 교육해야 하는 새로운 수요를 부른다. 멀티캠퍼스는 지난 16일 현업 과제를 AI로 해결하는 실습 프로그램인 "AX 해커톤"을 출시했다. 대기업과 공공기관을 겨냥한 신규 교육의 성과는 오는 11월 3분기 분기보고서에서 숫자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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