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석탄차 올라탄 승객들...내륙 물류비 절반으로 떨어뜨린 스톡턴 철도
화물 전용선에 올라탄 승객들...석탄 가격 절반으로 낮추며 철도 시대 열어

1825년 9월 27일 영국 북동부 더럼의 선로 위에 증기기관차가 섰다. 철도 기술자 조지 스티븐슨이 설계한 로코모션호였다. 철도 회사가 승객용으로 마련한 자리는 임시 좌석 300석뿐이었다. 하지만 개통식에 몰려든 군중은 빈 짐칸은 물론 석탄이 수북이 실린 화차 위까지 올라타 자리를 잡았다. 선로 안전을 맡은 기마원이 깃발을 들고 앞서 달렸다. 열차가 내리막에서 시속 19킬로미터로 속도를 내자 말을 앞질러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쇳덩어리가 뿜어내는 속도에 놀랐다. 진짜 변화는 다른 곳에 있었다. 이날 문을 연 스톡턴-달링턴 철도는 내륙 탄광의 석탄을 해안가 항구로 저렴하게 운송하기 위해 영국 북동부 사업가들이 1825년 개통한 세계 최초의 증기기관 공공 철도였다. 내륙 깊숙한 탄광에서 해안가 항구까지 석탄을 실어 나르는 운송비가 급감했다.
선로가 깔리기 전까지 내륙 화물 운송은 높은 비용에 가로막혀 있었다. 오클랜드 탄광에서 캔 석탄을 먼 항구로 옮기려면 수많은 마차에 의존해야 했다. 운하를 파는 방안도 검토됐지만 막대한 공사비 때문에 무산됐다. 운송비가 비쌌다. 내륙 탄광은 석탄을 캐고도 외부로 내다 팔지 못했고, 해안가 주민들은 톤당 18실링이라는 비싼 가격을 치르고 석탄을 뗐다.
기득권의 반발을 무마하려 씌운 법적 규제도 철도의 폭발력을 막지 못했다. 런던 시장을 쥐고 있던 기존 탄광주들의 반대로 영국 의회는 선박에 싣는 석탄 운임을 "마일당 반 페니"로 제한했다. 기득권층은 철도 회사가 이처럼 낮은 운임으로는 적자를 견디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증기기관차를 투입하자 운송 효율은 반대파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개통 석 달 만에 철도는 석탄 1만 톤을 운송했다. 마차 대신 선로를 타고 석탄이 쏟아져 들어오자 스톡턴의 석탄 가격은 톤당 18실링에서 12실링으로 낮아졌고, 이듬해에는 8실링으로 내려앉아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연료비가 낮아지면서 인근 공장의 생산비도 함께 줄었다. 런던으로 실려 나간 석탄도 첫해 수만 톤 규모에서 이듬해 세 배 가까이 늘었다.
계획에 없던 여객 운송도 시작됐다. 개통 당일 석탄차에 올라탄 승객들이 계기였다. 회사는 개통 직후 정기 여객 마차를 선로 위에 올렸고, 한 해 만에 승객 수만 명을 실어 날랐다. 변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늘어난 석탄 물동량을 스톡턴 부두가 감당하지 못하자 선로는 강 하류의 작은 포구인 미들즈브러까지 이어졌다. 농가 몇 채뿐이던 바닷가 미들즈브러는 철도가 닿은 뒤 수천 명이 모여 사는 공업 도시로 탈바꿈했다.
조지 스티븐슨이 탄광 마차의 바퀴 폭에 맞춰 이 선로에 깔았던 레일 간격은 1,435밀리미터였다. 이 간격은 훗날 전 세계 철도의 60%가 채택하는 표준궤의 기원이 됐고, 석탄을 나르기 위해 시작된 단선 철로에서 현대 교통망의 표준이 탄생했다.
이 글이 어땠나요?
눌러 주시면 다음 글을 쓸 때 소중한 참고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