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오늘의 역사

임시 협정으로 출발한 GATT, 47년간 관세 인하 이끌었다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선진국 공산품 평균 관세율을 6.3%에서 3.8%로 낮추기로 합의했다

박정우 작가

1947년 10월 30일3분

Illustration by Gemini

1947년 10월 30일 스위스 제네바 팔레 데 나시옹에서 23개국 대표가 관세무역일반협정(GATT)에 서명했다. 이 협정은 체약국 간 관세 장벽을 낮추고 차별 대우를 없애기 위해 마련한 다자 무역 협정이다. 브레턴우즈 체제의 한 축으로 준비 중이던 국제무역기구(ITO)가 공식 설립될 때까지 관세 인하 합의를 우선 적용하려 체결한 잠정 협정이었다.

23개국이 서둘러 관세 협정을 체결한 배경에는 1930년대 대공황의 뼈아픈 경험이 있었다. 미국은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제정해 수입품 관세를 대폭 인상했다. 법 제정을 전후해 여러 교역 상대국이 보복 관세로 대응했다. 영국은 자치령을 비롯한 제국 내부 교역에 관세 특혜를 부여하는 오타와 협정으로 제국 블록을 형성했다.

미국·영국 등 전후 통상체제 설계자들은 1930년대의 보호무역과 금융 혼란을 전쟁의 원인으로 인식하고, 관세를 낮추고 차별적 교역을 줄일 다자간 틀을 마련하고자 했다.

제네바 회담은 1947년 4월부터 10월까지 반년간 이어졌다. 23개국 대표들은 수백 차례의 양자 협상을 거쳐 약 4만5,000건의 관세 양허에 합의했다. 관세 양허 대상 무역액은 당시 세계 무역액의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100억 달러 규모였다.

이듬해인 1948년 3월 쿠바 아바나에서 50여 개국이 모여 국제무역기구 설립을 위한 아바나 헌장을 채택했다. 미국 트루먼 행정부는 1949년 4월 28일 헌장을 의회에 제출했지만 의회의 강한 반대에 직면했다. 1950년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 이후에도 의회는 헌장을 승인하지 않았다.

결국 1950년 12월 미국 트루먼 행정부는 아바나 헌장 승인 법안을 다음 의회에 다시 제출하지 않겠다고 발표했고, 국제무역기구 창설은 끝내 무산됐다. 정식 국제기구가 들어서지 못하면서 임시 규범으로 마련한 GATT만 남았다.

이 협정의 핵심 원리는 두 가지였다. 한 나라에 부여한 관세 인하 혜택을 나머지 모든 체약국에도 동일하게 적용하는 최혜국 대우와, 한번 합의한 관세를 일방적으로 다시 올릴 수 없도록 상한을 정하는 관세 양허 원칙이었다. 양국 간에 합의한 관세 인하가 최혜국 대우를 통해 모든 체약국에 자동 적용되면서 무역 장벽이 빠르게 낮아지는 구조가 갖춰졌다.

각국 통상 대표들은 정식 헌장이나 상설 기구가 없는 상태에서도 협상을 지속했다. 참여국들은 국제기구 정식 회원국 자격 대신 협정 가입국인 체약국 자격으로 정기적으로 모여 관세를 낮추는 다자간 협상 라운드를 이어갔다.

후대 연구는 미국·유럽경제공동체(EEC)·영국·일본의 관세 자료와 협상별 인하율을 바탕으로, 1947년 제네바 협상 직전 주요 경제권의 관세가 부과되는 비농산품 평균 관세율을 약 22%로 역산해 추정했다. 이후 프랑스 안시, 영국 토키 등에서 협상이 이어졌고, 1964년 케네디 라운드 시작 전 이 네 경제권의 평균 관세율은 약 14% 수준이었다. WTO는 이처럼 지속된 관세 인하가 1950~1960년대 세계 교역의 고속 성장에 기여했다고 설명한다.

관세 인하 이후에도 산업 보호는 계속됐다. 서유럽과 북미 정부들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경기 침체로 실업과 공장 폐쇄가 늘자 관세 밖의 보호 수단을 찾았다. 농업 교역에서 자국의 지위를 지키기 위한 보조금 경쟁도 그중 하나였다. 관세를 낮춰도 이런 보호조치가 교역을 제한하는 데다 확대된 서비스 교역은 GATT 규칙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었다. 체약국들은 기존 규칙을 보완하고 적용 범위를 넓히는 협상을 추진했다.

1986년 시작된 우루과이 라운드는 농업과 서비스 등을 의제로 삼았고, 최종적으로 123개국이 참가한 사상 최대 규모의 협상이 됐다. 협상은 1993년 12월 종결됐고, 이듬해 4월 15일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협정 서명이 이뤄졌다. 각국은 서비스무역일반협정(GATS)에 따라 업종별로 외국 서비스 제공자에게 허용할 시장 접근의 범위와 조건을 약속했다. 농업에서는 수입 할당 등 비관세 수입 제한 대부분을 관세로 전환하고 그 관세를 낮추는 한편, 국내 보조와 수출 보조금을 감축하기로 했다. 관세 분야에서는 선진국 공산품 평균 관세율을 6.3%에서 3.8%로 낮추기로 했다. 이 관세 인하는 대부분 1995년 1월 1일부터 5년에 걸쳐 이행됐다.

이후 1995년 1월 1일, 정식 국제기구인 세계무역기구(WTO)가 공식 발족했다. GATT 1947의 조항과 후속 법적 문서, 조항 해석 등을 담은 GATT 1994가 WTO 협정에 포함됐다. GATT 1994는 GATT 1947과 법적으로 별개의 협정으로, 지금도 WTO 체제 안에서 상품무역의 기본 규칙으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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