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오늘의 역사

광산 금융 품은 토론토 거래소, 몬트리올 제치고 캐나다 중심으로

1934년 스탠더드 광업거래소와 합병하며 연간 거래량에서 처음으로 몬트리올을 추월했다

박정우 작가

1861년 10월 25일2분

Illustration by Gemini

1861년 10월 25일 캐나다 토론토 메이슨 홀에 24명의 중개인이 모여 토론토 증권거래소를 공식 설립하기로 결의했다. 초기 거래 시간은 하루 30분, 회원 가입비는 5달러였다. 거래 대상은 18개 종목에 불과했고 하루에 체결되는 거래는 2~3건 수준이었다.

당시 캐나다의 금융 중심지는 몬트리올이었다. 토론토에 설립된 증권거래소는 출범 초기부터 위기를 맞았다. 출범 8년 뒤인 1869년 어퍼 캐나다 지역 은행들이 잇따라 파산하자 거래소의 거래가 중단됐다.

1870년 은행주 강세가 투자자의 신뢰를 북돋웠고, 1871년 가을 창립 회원 24명 가운데 8명이 다시 참여해 거래소를 재건했다. 1878년에는 온타리오주 의회의 법률로 법인화됐다.

이후 광산 개발에 필요한 자금 수요로 거래소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1890년대 브리티시컬럼비아의 골드러시로 채굴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들이 늘어났다.

몬트리올과 토론토의 기존 거래소는 광산 기업에 대한 투자를 투기적이고 위험하다고 여겨 이들 기업의 주식 발행을 받아들이는 데 소극적이었다. 토론토에 별도로 설립된 두 광산 주식 거래소가 이들 기업의 자금 조달 수요를 받아들였다. 두 거래소는 이후 스탠더드 광업거래소로 통합되면서 토론토에 광산 기업과 투자자를 연결하는 시장이 자리 잡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에 이어 온타리오 북부에서도 광산 개발이 이뤄졌다. 1903년 코발트에서 은이 발견된 데 이어 1909년에는 포큐파인에서 대규모 금광이 발견되면서 골드러시가 시작됐다.

광업 금융의 중요성은 대공황을 거치며 더 뚜렷해졌다. 1934년 미국 정부가 금의 공정가격을 온스당 35미국 달러로 올리자 금광 주식이 강세를 보였다. 광산 주식 거래가 활기를 띠는 동안 몬트리올과 토론토 거래소의 비광업 부문에서는 거래량이 줄었다. 광업 금융이 집중된 토론토에는 두 도시의 경쟁 구도를 바꿀 조건이 생겼다.

1934년 토론토 증권거래소는 스탠더드 광업거래소와 합병했다. 광산 주식 거래가 합쳐진 그해 토론토의 총 거래량은 처음으로 몬트리올을 넘어섰다. 몬트리올은 당분간 금융 중심지 지위를 유지했지만, 광업 금융의 성장은 중심이 토론토로 이동하는 발판이 됐다.

이후 두 도시 거래소의 역할도 달라졌다. 1999년 캐나다 거래소 재편에서는 토론토 증권거래소(TSX)가 대형 우량주 거래를 전담하고, 몬트리올 증권거래소는 파생상품 거래를 맡았다. 밴쿠버와 앨버타 거래소는 합병해 벤처 기업 등 소형주를 거래하는 캐나다 벤처거래소를 설립했다. 토론토 증권거래소는 2001년 이 거래소를 인수한 뒤 2002년 TSX 벤처거래소로 이름을 바꿨다. 두 도시의 거래소는 주식 거래를 놓고 경쟁하던 관계에서 기능을 분담하는 관계로 바뀌었다.

광산 기업들은 토론토 증권거래소와 TSX 벤처거래소를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2025년 토론토 증권거래소와 TSX 벤처거래소에서 광산 기업이 주식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은 160억캐나다달러였다. TSX 벤처거래소에서 성장한 광산 기업은 토론토 증권거래소로 이전 상장해 더 큰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2000~2025년 이 경로로 토론토 증권거래소에 옮겨 온 광산 기업은 300곳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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