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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살바도르의 해외 가족 송금...상품 수출액의 95.1%
인디고에서 커피로 바뀐 수출 작물...2019년 해외 송금은 GDP의 약 21%
중앙아메리카 태평양 연안에 자리 잡은 나라인 엘살바도르에서는 2019년 해외에서 일하는 가족이 본국 가계에 보낸 돈이 상품 수출액의 약 95.1%에 이르렀다. 국내에서 생산한 상품을 팔아 버는 돈과 해외에서 일하는 가족이 보내는 돈이 함께 들어온 것이다.
스페인 식민지 시기 엘살바도르의 주요 수출품은 식물에서 추출한 청색 염료 인디고였다. 16세기 말부터 농장 토지를 소유한 스페인 지주들은 엘살바도르 중부와 해안 지역 등으로 인디고 농장을 확대했다. 농장에 강제로 동원된 원주민들은 위생 상태가 나쁜 염료 작업장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 병들고 죽었다. 지주들이 농장을 넓히면서 원주민 공동체도 토지를 잃었다.
인디고에서 커피로 수출 작물이 바뀌는 과정은 점진적으로 진행됐다. 19세기 후반에도 두 작물은 상당 기간 함께 생산됐고, 인디고 생산이 서서히 감소하는 동안 커피 생산은 더 빠르게 늘었다. 천연 인디고를 대체하는 합성 인디고가 등장한 1897년에는 이미 엘살바도르가 커피를 주력 수출품으로 삼고 있었다.
이보다 앞서 커피 수출 여건도 달라졌다. 1855년 파나마 철도가 개통되면서 엘살바도르의 태평양 항구에서 출발한 상품을 파나마 지협의 철도로 대서양 쪽까지 운송해 다른 선박에 실을 수 있게 됐다. 엘살바도르와 유럽 시장을 잇는 해운 서비스가 이 경로를 이용하면서 운송비가 크게 낮아졌다. 커피는 같은 부피의 인디고보다 가격이 낮아 운송비 부담이 컸으므로 운송비가 낮아지자 커피 생산과 수출의 수익성이 높아졌다. 커피 재배지는 비옥한 화산 토양의 경사면에 조성됐다.
19세기 후반 정부는 커피 재배지를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1881년과 1882년에는 원주민 공동체 토지와 마을 공유지인 에히도의 공동 소유를 폐지해 사유화했다. 정부는 그 전부터 시행해 온 부랑자 단속법을 근거로 고용주가 서명한 고용 증명서를 지참하게 하고, 일하지 않는 사람을 처벌해 노동을 강요했다. 땅을 잃고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농민 등이 늘어난 상황에서 이런 단속은 커피 농장의 노동력을 확보하는 수단이 됐다.
커피로 부를 쌓은 지주 가문에 토지가 집중됐고, 이들 가문은 정부와 군대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1912년 정부가 창설한 농촌 경찰 조직인 국가경비대는 커피 농장의 치안을 담당했다.

수출 작물에 집중한 경제에서는 해외 가격 변화가 농촌의 생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공황 때 커피 가격이 폭락한 상황은 1932년 농민 봉기의 배경이 됐다. 1970년대 말에는 대형 커피 농장을 운영하는 지주층이 토지 개혁에 반대했고, 군은 토지 개혁과 노동권을 요구한 사람들을 탄압했다. 1980~1992년에는 정부군과 좌익 반군이 내전을 벌였다. 전쟁과 민간인에 대한 폭력으로 많은 국민이 고향을 떠나 해외로 이주했다.
해외로 떠난 이민자들은 본국의 가족에게 돈을 보냈다. 유엔 엘살바도르 가계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가족 송금을 받은 가구는 46만8,550가구로 전체 가구의 24.1%를 차지했다. 2019년 한 해에 들어온 가족 송금액은 56억5,020만달러였고, 세계은행은 보고서에서 송금액의 GDP 비중을 20.9%로 제시했다.
2019년 상품 수출액은 59억4,330만달러로, 가족 송금액은 상품 수출액의 약 95.1%에 해당했다. 엘살바도르는 상품 수출로 의류와 설탕 등 국내 생산품을 팔아 외화를 벌었고, 해외 이민자들은 해외에서 번 소득을 본국 가계에 송금했다. 두 금액을 비교하면 해외 가족 송금의 규모를 알 수 있다.
인디고와 커피를 재배해 해외에 파는 수출 농업에 더해, 해외에서 일하는 가족의 소득도 본국 가계로 외화가 들어오는 통로가 됐다. 엘살바도르에서 2019년 가족 송금은 상품 수출액의 약 95.1%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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