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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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강 이름을 단 작전, 소련 병사들은 파카를 입고 쿠바에 내렸다

북극 강 이름에 양털 파카까지...열세 날의 고비는 명령 닿지 않는 현장에서 갈려

리지

쿠바 미사일 위기1분

1962년 여름 배에 오른 소련 병사들은 스키 부츠와 양털 파카를 받았다. 부대가 혹한지로 향한다는 설명을 들은 데다 작전명 역시 시베리아 북극권 강에서 따온 아나디리였다. 그러나 배는 열대 카리브해 쿠바에 닿았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소련이 쿠바에 몰래 짓던 중거리 탄도미사일 기지가 그해 10월 미군 정찰기에 포착돼 두 나라가 열세 날을 맞선 사태다. 이 열세 날의 대치는 적을 속이려 자국 병사부터 속인 데서 비롯됐다.

양국 대치의 고비는 두 수도 바깥의 현장에서 갈렸다. 10월 27일 쿠바에 주둔하던 소련군 장군 둘이 미군 U-2 정찰기 한 대를 격추하라고 지시했다. 현지 총사령관과 연락이 닿지 않자 두 사람이 독단으로 결정해 미국 정찰기를 쏘지 말라던 모스크바의 직접 명령을 어겼다. 미군 조종사는 목숨을 잃었고, 미국은 U-2가 격추되면 곧바로 공격하기로 이미 합의해 둔 상태였다. 미국 국방장관은 40년 뒤 "다행히 우리는 마음을 바꿨다"고 회고했다.

같은 날 바다 밑에서도 본국의 명령은 닿지 않았다. 미 해군 구축함들이 봉쇄선 부근 소련 잠수함 B-59에 수류탄만 한 연습 폭뢰를 투하했다. 부상을 요구하는 신호였으나 잠수함은 너무 깊은 곳에 머물러 며칠째 모스크바의 전문을 받지 못했다. 함장은 전면전이 터졌다고 판단해 히로시마 원폭만 한 핵어뢰를 미국 항공모함에 겨누게 했다. 발사에는 선임 셋의 동의가 필요했으나 그 배에 타고 있던 전단장 아르히포프가 홀로 동의하지 않았다. 이 일은 2002년에야 알려졌다.

미 해군에 쫓겨 떠오른 소련 잠수함 B-59. 1962년 10월. 사진 미 해군, 위키피디아

위기가 끝난 뒤에도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쿠바에 남았다. 두 정상의 목록에 없던 전술 핵탄두 100발 남짓이 그대로 쿠바에 있었고, 흐루쇼프가 이것만은 카스트로에게 넘기려 하자 모스크바에서 온 부총리가 있지도 않은 소련 법을 들어 막았다. 12월에 탄두들이 상자에 담겨 배로 돌아가면서 양털 파카와 스키 부츠까지 챙겼던 위장 작전도 끝났다. 그 비밀은 미국의 눈을 몇 주 가리는 데 그쳤지만, 자국군의 눈은 마지막 상자를 실을 때까지 가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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