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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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가 낸 식량 배급 공식 하나, 1800만 명 삼킨 "굴라크"의 자멸

할당량 못 채우면 밥 줄여 아사 악순환...무상 노동 내세운 수용소 거대 적자 기구로 전락

리지

굴라크2분

Illustration by Gemini

1927년 소련의 교도행정 책임자는 수용소에서 죄수의 노동을 쥐어짜 "황금 땀"을 흘리게 하는 것은 상업적 이익일지 몰라도 소비에트 교정 시설에서는 "전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기록했다. 죄수는 처벌과 교화의 대상이지 이윤을 뽑아낼 자원이 아니라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이 엄숙한 원칙은 국경 밀수 혐의로 솔로베츠키 섬 수용소에 갇힌 죄수가 보낸 편지 한 장으로 뒤집혔다. 상인 출신 죄수 나프탈리 프렌켈은 수용소 행정부에 "일한 생산량에 맞춰 식량을 차등 지급하자"며 영양 척도 제안서를 올렸다.

굴라크는 이 제안이 받아들여진 뒤 1930년 소련이 세운 교정 노동 수용소 총관리국이다. 죄수의 무상 노동을 국가 건설에 쓰겠다는 계산 아래 정치범 단속과 수용소 관리를 맡은 소련의 비밀경찰이 운영했고 해체될 때까지 1,800만 명이 이곳을 거쳐 갔다.

이 제안은 비밀경찰 수뇌부의 눈에 들었고, 제안자인 프렌켈은 죄수에서 일약 수용소 관리자로 발탁됐다. 얼마 뒤 소련 지도부는 교정 시설을 자급자족형 노동 체계로 전면 개편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설립된 기구가 교정 노동 수용소 총관리국, 즉 굴라크(GULAG)다. 굴라크는 소련 전역의 강제 노동 수용소를 총괄하며 무상 노동력을 국가 건설에 조달하던 거대 행정 기구였다. 처벌 기관이어야 할 교도 행정이 독자적인 경제 부처로 변신한 순간이었다. 북극권 목재 벌채와 광산 채굴, 백해와 발트해를 잇는 운하 건설 같은 대규모 토목 공사를 굴라크가 도맡았다.

하지만 일한 만큼 먹인다는 수용소 경제학은 치명적인 모순을 품고 있었다. 영하 수십 도의 혹한에서 통나무를 베고 얼어붙은 땅을 파내려면 막대한 열량이 필요하다. 그런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죄수는 규정에 따라 식량이 깎였다. 밥이 줄어든 죄수는 이튿날 기력이 떨어져 생산량이 더 줄었고, 줄어든 생산량은 다시 식량 삭감으로 이어졌다. 이 악순환의 끝은 몇 주 만의 아사였다. 생산성을 끌어올리겠다고 고안한 배급 공식이 귀중한 노동력 자체를 가장 빠르게 소모해 없애는 기계가 되고 말았다.

1950년대 굴라크 산하 수용소 가운데 하나인 인타 수용소의 탄광에서 식사하는 정치범들. 위키피디아

공짜 노동으로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계산도 허상으로 드러났다. 굴라크는 수백 개 관리국을 거느린 거대 관료 조직으로 팽창했지만, 생산성은 일반 노동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죄수들을 격리하고 감시하는 병력과 시설 유지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수용소 체제는 오랜 세월 단 한 해도 흑자를 내지 못한 채 국가 재정을 갉아먹는 만성 적자 기구로 전락했다.

스탈린이 사망하자마자 비밀경찰 수장이었던 라브렌티 베리야는 가장 먼저 수용소를 털어냈다. 그는 수용소 체제가 경제적으로 유지될 수 없고 막대한 낭비라는 보고서를 올린 뒤 수감자를 대거 사면하며 해체에 착수했다. 황금 땀을 짜내 국가를 건설하겠다던 한 죄수의 계산법은 1,800만 명을 거쳐가게 했으나, 남은 것은 황금도 부강도 아닌 감당할 수 없는 낭비의 청구서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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