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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구절 대보라며 벗었던 베일, 목소리마저 지운 아프간 60년
1959년 왕비의 얼굴 공개 뒤 의대생·판사 쏟아졌지만...농촌과 단절된 위로부터의 계몽 반동 맞아 세계 유일의 교육 금지국 전락

1959년 8월, 아프가니스탄 독립기념일 군사 열병식 귀빈석에 자히르 샤 국왕의 부인 후마이라 왕비와 총리의 부인 자미나 베굼이 얼굴을 드러낸 채 나타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가리는 전통 베일인 차도르를 벗은 차림이었다. 이슬람 성직자들이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어겼다며 거세게 항의하자 총리 무함마드 다우드 칸은 성직자들을 수도 카불로 불러들였다. "경전에서 여성이 얼굴을 가리는 베일을 의무로 써야 한다는 구절을 직접 찾아 증거로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은 전체 인구의 절반을 이루는 사회 구성원이다. 20세기 중반 왕실의 세속화 개혁으로 교육과 사회 진출의 권리를 얻었으나, 완고한 부족 사회의 전통과 탈레반의 극단적 통제 속에서 급격한 권리의 부침을 겪었다.
성직자들은 경전 구절을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총리는 이슬람 율법이 베일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됐으니 왕실 여성은 더 이상 베일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법으로 베일을 강제하지는 않았지만 왕비의 얼굴 공개를 신호로 고위 관료의 가족과 도시 중산층 여성들이 앞다퉈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라디오 방송국과 국영 항공사, 정부 기관에 여성 직원이 채용되며 카불의 풍경은 빠르게 바뀌어 갔다.
이 선언 이후 카불은 전에 없던 전성기를 맞았다. 새 헌법으로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교육권과 노동권, 참정권이 주어졌다. 여성이 의과대학과 국립대 강단에 섰고, 첫 여성 판사와 여성 장관이 정부에 입각했다. 거리에는 무릎 위로 올라오는 옷을 입은 여대생들이 활보했고, 무대 위에서는 여성 가수가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이 눈부신 풍경은 수도 카불과 소수 도시 엘리트의 섬에 그쳤다. 인구의 80%가 살아가는 농촌은 가부장적 부족 관습이 지배하는 세계였다. 훗날 권력을 잡은 공산정권은 도시의 세속화를 농촌 전역으로 강제 이식하겠다며 여학생 의무 교육과 문해 운동을 밀어붙였다. 딸을 집 밖으로 내보내는 것을 가문의 수치로 여기는 농촌 부족민들에게 강제 등교는 무신론 정권의 폭력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반발은 보수 부족민들이 총을 들고 무자헤딘 반군에 대거 합류하는 결정적인 도화선이 됐다.
정권이 무너지자 억눌렸던 반동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이슬람 무장세력은 "여성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집을 나서지 말라"는 포고령을 내렸다. 뒤이어 집권한 탈레반은 여성의 교육과 고용을 원천 차단했다. 2021년 미군 철수 후 다시 정권을 잡은 탈레반은 열두 살을 넘긴 여학생의 상급 학교 진학을 전면 금지하고 공원과 미용실 출입까지 막았다. 집 밖에서 여성의 말소리나 노랫소리가 새어 나가는 것조차 금지된 아프가니스탄은, 오늘날 유엔이 성별 분리 탄압을 뜻하는 "성별 아파르트헤이트"로 규정한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인 땅으로 전락했다.
성직자들에게 경전 구절을 제시하라며 당당하게 베일을 벗어던진 반세기 전 열병식의 왕비는 오늘날 벌어질 이 철저한 반동을 상상이나 했을까. 농촌의 삶과 관습을 설득하지 못한 채 권력의 힘으로만 밀어붙인 계몽은 거대한 반동의 파도 앞에서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경전에 적혀 있지 않다던 베일은 이제 여성의 목소리마저 지워버리는 가장 무거운 장벽이 되어 그 땅을 덮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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