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백과사전

비판 차단하려 자국민 사찰까지...이스라엘이 마주한 비판의 안과 밖

유엔 결의안 19건 대 0건의 불균형...정당한 정책 비판과 혐오를 가르는 기준 시험대에

리지

이스라엘 비판3분

Illustration by Gemini

2012년 여름 아일랜드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본국 외교부로 보낸 내부 전문이 현지 방송에 보도됐다. 공관 차석을 맡은 외교관이 작성한 이 문건에는 유럽에서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자국 출신 유학생과 교민을 표적으로 삼자는 공작 방안이 담겨 있었다. 비판자들의 사진을 찍어 배포하고 사생활 정보를 흘려 "현지 활동가들로 하여금 이들이 모사드 첩보원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게 만들자"는 내용이었다. 외교관이 비판을 차단하겠다며 자국민을 역공작의 먹잇감으로 삼으려 한 이 계획은 보도 직후 이스라엘 외교부가 서둘러 진화에 나서며 무산됐다.

이스라엘 비판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 벌어진 나크바와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 인권 침해와 군사 작전을 둘러싸고 제기되어 온 국제사회의 반대와 규탄을 일컫는다.

영토 분쟁과 안보 위협이 상존하는 현실 속에서 이 비판을 마주하는 이스라엘 내부의 불안감은 뿌리가 깊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교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50% 이상이 "온 세상이 우리를 적대하고 있다"고 답했다. 나아가 응답자의 75%는 "이스라엘이 무슨 조치를 취하든, 분쟁 해결을 위해 얼마나 양보하든 세계는 비판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외부의 목소리를 순수한 정책 비판이 아닌 실존적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포위 심리가 사회 전반에 자리 잡은 배경이다.

실제로 국제무대에서 이스라엘을 향한 비판은 종종 기형적인 쏠림을 보였다. 유엔 총회가 한 해 동안 채택한 이스라엘 규탄 결의안이 19건에 달했던 때가 있었다. 서부 다르푸르에서 대량 학살이 벌어지던 수단을 향한 결의안은 단 1건도 통과되지 않았다.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산하 인권 감시 기구였던 유엔 인권위원회가 이스라엘을 겨냥해 통과시킨 결의안 4건은 벨라루스·쿠바·미얀마·북한에 내려진 결의안 각 1건을 합친 전 세계 결의안 총합과 같았다. 비판의 불균형이 극에 달하자 예루살렘을 방문한 당시 유엔 사무총장도 "유엔 내부에서 이스라엘 정부와 국민을 향한 편향된 태도가 존재해 온 것은 불행한 상황"이라고 인정했다.

2004년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과 행동을 촉구하는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 사진 존 매튜스(CC BY-SA 3.0), 위키피디아

외교적 편향과 정당한 비판이 뒤섞이자 양자를 가르는 객관적 기준을 세우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소련의 반체제 인사 출신인 전 이스라엘 장관 나탄 샤란스키가 제안한 "3D 기준"이 대표적이다. 그는 비판이 악마화(Demonization), 이중잣대(Double standards), 탈정당화(Delegitimization)에 이르면 정당한 국정 비판을 넘어 반유대주의 혐오로 보아야 한다고 정의했다. 국가의 행위를 터무니없이 과장해 절대악으로 묘사하거나, 다른 민주주의 국가에는 요구하지 않는 비현실적 도덕 기준을 들이대거나, 국가 자체의 생존 권리를 부정하는 주장은 궤를 달리한다는 설명이었다. 이 기준은 이후 유럽연합 인종차별감시센터(EUMC)의 실무 정의 초안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도덕적 잣대가 정치적 방패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갈등이 불거졌다. 정부 정책에 대한 합리적 지적까지 반유대주의 혐오로 몰아세워 비판을 가로막는다는 반발이 나왔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철학자 브라이언 클루그는 "모든 반시온주의를 반유대주의로 몰아가면 진정한 혐오를 가려내는 힘마저 잃는다"고 짚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권 지도자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 역시 인종격리 정책 철폐 운동의 경험을 들며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에 책임을 묻는 국제사회의 보이콧 운동이 정당한 권리 옹호임을 강조했다. 무비판적인 비호와 무차별적인 혐오 규정이 오히려 공론장을 질식시킨다는 지적이었다.

국가를 향한 비판과 민족을 향한 증오는 엄연히 구별되어야 하지만, 그 선을 긋는 자리는 언제나 외교적 실리와 정치적 공방의 최전선에 있다. 아일랜드 주재 공관에서 자국민 사찰을 건의했던 외교관의 제안서는 외교부의 공식 거부 결정이 내려진 뒤 내부 서랍으로 들어갔다.

이 글이 어땠나요?

눌러 주시면 다음 글을 쓸 때 소중한 참고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