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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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빙기의 혹한, 얼어붙은 강 위로 세운 시장

1565년 첫 겨울 풍경화부터 배 밑 스케이트까지...혹한 속에서 일상과 교역의 새 판 열려

리지

소빙기2분

1565년 겨울 플랑드르 화가 피터르 브뤼헐은 눈 덮인 언덕을 그렸다. 언덕에서 세 사냥꾼이 지친 개들을 이끌고 마을로 내려오는 모습이었다. 당시 유럽 회화에서 겨울 풍경은 그림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1565년 겨울 브뤼셀을 덮친 한파는 유독 길고 혹독했다. 화가는 이 추위를 배경 삼아 얼어붙은 연못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군중을 캔버스 전면에 세웠다. 브뤼헐의 대표작 "눈 속의 사냥꾼"은 그렇게 탄생했다. 독창적인 예술적 착상처럼 보였던 이 그림은 실은 거대한 기후 변동의 신호였다.

소빙기는 13세기 초부터 19세기까지 이어진 비교적 서늘한 시기다. 이 시기 지구 평균 기온은 평년보다 고작 1도 남짓 낮았다. 하지만 이 작은 냉각이 문명의 기초를 흔들었다. 실제로 화산 폭발로 분출된 유황 입자가 햇빛을 가렸다. 태양 흑점 활동도 줄어들었다. 차가워진 기후 탓에 알프스의 빙하가 내려와 농가와 마을을 덮쳤다. 바다에서도 발트해가 얼어붙어 배들이 멈춰 섰다. 이처럼 당대의 상식과 관행이 무색해지면서 사람들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겨울을 맞았다.

기후 충격에 가장 약한 고리부터 무너졌다. 1570년대와 1580년대 늦서리와 흉작이 닥쳤다. 이때 유럽 전역에서 마녀사냥이 급증했다. 사람들은 궂은 날씨를 몰고 왔다는 책임을 가난한 여성들에게 돌렸다. 이러한 굶주림과 자원 고갈은 30년 전쟁 같은 유혈 분쟁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신성로마제국 일부는 인구가 70% 감소했다. 기후의 충격을 견디지 못한 공동체는 그렇게 무너졌다.

피터르 브뤼헐의 "눈 속의 사냥꾼". 위키피디아

하지만 위기 속에서 일상의 기술이 새로 발전했다. 당시 홀 중앙에 모닥불을 피우던 관습 대신 굴뚝이 보급됐다. 이 굴뚝 덕분에 집은 여러 방으로 나뉘고 주인과 하인의 공간도 분리됐다. 옷에서도 옷깃을 여미기 위해 단추와 단춧구멍이 늘어났다. 방한을 위한 촘촘한 편물 내의도 이때 자리 잡았다. 현악기 제작자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남긴 바이올린의 독특한 음색 역시 혹한으로 나무 나이테가 촘촘해진 결과였다.

얼어붙은 환경을 도리어 새 기회로 바꾼 곳도 있었다. 실제로 네덜란드 공화국은 얼어붙은 운하를 상업의 발판으로 활용했다. 다섯 달 동안 뱃길이 막히자 상인들은 배 밑에 날을 달아 썰매배를 띄웠다. 썰매배 덕분에 얼어붙은 수로는 도로보다 빠른 물류망이 됐다. 사람들은 스케이트를 타고 얼음 위를 달렸다. 결국 네덜란드는 혹한 속에서 전례 없는 무역 황금기를 열었다.

브뤼헐이 그린 언덕 아래에는 얼어붙은 연못에서 팽이를 돌리고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의 활기가 가득했다. 1도 남짓 떨어진 기온은 문명을 얼어붙게 했지만, 동시에 옷의 단추를 채우고 배에 날을 달아 얼음 위를 달리게 했다. 런던 사람들은 1814년 2월 템스강 위에서 마지막 프로스트 페어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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