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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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도사진상, 오토바이 추락에서 시작된 70년

1955년 경주로 사고로 출발...찰나의 충격보다 역사의 상흔 기록해

리지

세계보도사진상3분

Illustration by Gemini

1955년 8월 덴마크의 한 시골 경주로에서 굉음이 울렸다. 경주로의 흙먼지 속을 질주하던 모터사이클 한 대가 균형을 잃었다. 균형을 잃은 차체는 관중석 앞 흙탕물로 곤두박질쳤다. 이때 덴마크 보도사진가 모겐스 폰 하벤이 셔터를 눌렀다. 바퀴가 허공을 가르고 선수가 튕겨 나간 전복의 순간이 렌즈에 포착됐다. 이 전복 사진은 네덜란드 보도사진가들이 창설한 첫 국제 대회에서 대상작으로 선정됐다. 이 대회가 오늘날 가장 권위 있는 세계보도사진상의 출발점이 됐다. 세계 최고 권위의 보도사진상은 시골 경주로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쓴 모터사이클 충돌 사고에서 출발했다.

세계보도사진상은 네덜란드 세계보도사진재단이 매년 한 해를 대표하는 사진 한 장을 선정해 수여하는 상이다. 당시 네덜란드 보도사진가협회는 창립 기념일을 맞아 대회를 국제 규모로 확대했다. 첫 대회에는 11개국 사진가 42명이 작품 300여 점을 출품했다. 초기 심사위원회는 출품작 가운데 스포츠의 역동성에 주목했다. 역동성과 함께 일상의 속도감도 중요한 평가 기준이었다. 몇 해 뒤 열린 대회에서도 비 내리는 축구 경기장을 담은 사진이 대상작에 올랐다. 폭우 속에서 홀로 골대를 지키는 골키퍼의 모습이었다. 당시 보도사진은 눈앞의 보기 드문 광경을 재빨리 포착하는 경쟁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스포츠 경기의 찰나만으로는 세계의 격변을 오래 담아낼 수 없었다. 격변의 시대 속에서 보도사진의 시선은 차츰 냉전과 인권의 최전선으로 이동했다. 실제로 1957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해딩고등학교에 첫 흑인 학생이 첫발을 디뎠다. 15세 소녀 도로시 카운츠가 그 등굣길에 나섰다. 카운츠의 등교 현장을 포착한 사진은 그해 대상작으로 선정됐다. 등교하는 소녀의 뒤편으로 백인 청소년들이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백인 청소년들의 노골적인 조롱과 야유가 렌즈에 고스란히 담겼다. 사회적 모순과 인간의 존엄이 충돌하는 역사의 현장이 보도사진의 중심을 차지했다.

1957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해딩 고등학교에 첫 흑인 학생으로 등교하는 도로시 카운츠와 그를 조롱하는 백인 학생들. 위키미디어 공용
베트남전쟁과 냉전의 격랑은 상의 성격을 돌이킬 수 없이 바꿨다. 격랑 속에서 불교 탄압에 맞서 스스로 불길에 휩싸인 승려의 분신 사진이 대상작으로 선정됐다. 사이공 거리 한복판에서 벌어진 현장 처형 사진도 대상에 올랐다. 전차 조준경을 들여다보는 병사의 모습을 담은 전장 사진도 있었다. 전차 사진은 컬러사진으로는 처음 대상작에 오른 기록이다. 보도사진은 단순한 사건의 신속한 전달에 머물지 않았다. 전달의 속도 대신 시대의 고통과 상흔을 응축하는 증언의 무게를 담아냈다.

상이 시대의 상흔을 기록하는 무대가 되면서 심사 기준은 한층 까다로워졌다. 까다로워진 심사위원 10명은 마땅한 작품이 없다고 판단하면 수상작을 내지 않았다. 실제로 네 차례에 걸쳐 대상을 수상작 없이 비워 두었다. 하지만 진실을 기록한 대가로 위협에 노출된 사진가의 안전을 지키는 데는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1973년 칠레 군부 쿠데타 당일 대통령궁 라 모네다의 사진이 대상작으로 선정됐다.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하지만 사진가의 신원은 피노체트 독재 정권의 보복을 막기 위해 33년 동안 베일에 가려졌다. 베일에 가려졌던 그의 이름은 사진가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비로소 세상에 공개됐다.

엄정한 시선은 1987년 한국의 거리에도 닿았다. 당시 서울 구로구청 앞에서 부정선거 의혹에 항의하는 농성이 벌어졌다. 농성장에서 아들이 경찰에 연행되자 한 어머니가 경찰 방패 앞에 무릎을 꿇었다. 눈물로 애원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이듬해 대상작으로 선정됐다. 세계보도사진상은 거대한 정치 구호보다 폭력의 무게를 견뎌낸 평범한 어머니의 절규에 주목했다. 수만 장의 출품작 가운데 단 한 장을 가려내는 기준은 이렇게 달라졌다. 선정 기준은 셔터의 기교를 넘어 프레임이 짊어진 시대의 무게에 닿아 있었다.

세계보도사진상은 70년 전 덴마크 시골 트랙의 흙탕물에 나뒹굴던 오토바이 사고에서 출발했다. 이 상은 이제 세계 각국에서 수만 점이 경쟁하는 기록의 전당으로 도약했다. 지금도 대상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상금은 5,000유로(약 750만원)에 머문다. 적은 보상에도 사진가들은 분쟁과 재난의 현장을 지킨다. 사진가들은 역사의 결정적 장면을 인류의 기억에 새긴다는 자부심으로 현장을 지킨다. 첫 대회 당시 조촐하게 출발했던 세계보도사진재단은 여전히 현장을 기록한다. 재단은 지금도 해마다 100개 넘는 도시를 돌며 세계 시민들에게 역사의 증언을 펼쳐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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