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 읽기
30% 깎여도 받는다...조기연금 96만 명
10년 만에 2.2배로 급증...42%는 월 50만원도 못 받아

국민연금은 정해진 나이까지 성실하게 보험료를 내고 은퇴 뒤 약속된 금액을 전액 받는 사회적 약속이다. 제때보다 일찍 받으면 1년에 6%씩 깎여 5년을 당겨 받으면 평생 30%가 줄고 나이가 차도 회복되지 않는 만큼 본래 조기노령연금은 질병이나 실직으로 생계가 막힌 소수를 위한 비상 창구였다. 하지만 이 비상 창구로 들어선 수급자는 지난해 96만 명으로 10년 새 2.2배 불어났고, 평생 깎인 연금을 받아 "손해연금"이라 불리는 이들 가운데 42%는 한 달에 50만원도 받지 못한다.
지난 10년의 통계를 보면 연금을 온전하게 지키려던 안전판이 완전히 무너진 현실이 드러난다. 감액을 감수하고 당겨 받겠다는 조기 수급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2014년 44만 1,219명이던 조기노령연금 수급자는 2024년 96만 947명으로 불어나 10년 만에 2.2배(117.8%)로 뛰었고, 한 해 지급액도 2조 4,384억원에서 7조 6,108억원으로 3.1배 급증했다. 2024년 기준 전체 노령연금 수급자 601만 5,091명 가운데 16.0%가 깎인 연금을 받고 있다. 수급자 6명 중 1명이 스스로 감액을 택한 셈이다.
왜 이런 역전이 일어났을까? 은퇴자들의 지갑 사정, 정년과 연금 개시 연령 사이에 벌어진 틈새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법정 정년은 60세에 멈춰 있는데 연금 받는 나이는 밀려나 1961년생이 만 62세가 되던 2023년 수급 개시 연령은 만 63세로 1년 늦어졌다. 정년퇴직 뒤 국민연금이 나올 때까지 최소 3년에서 5년 동안 소득이 완전히 끊기는 공백기가 생긴 것이다. 퇴직금은 바닥나고 재취업 문은 좁은 데다 당장 매달 들어가는 생활비 없이 버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진퇴양난 속에서 은퇴자들은 조기 수령을 출구로 택했고, 2023년 한 해에만 수급자가 10만 1,890명 늘어나며 역대 최대 증가 폭을 기록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통계를 구간별로 뜯어보면 사정은 더욱 절박하다. 2024년 조기노령연금 수급자 96만 947명 가운데 월평균 수령액이 50만원에 못 미치는 사람은 40만 4,278명에 이르렀다. 전체의 42.1%에 이르는 규모다. 60만원 미만으로 넓히면 절반을 넘는 50만 7,637명(52.8%)에 이른다. 10명 중 4명 이상이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으려고 평생 30% 감액이라는 무거운 대가를 치렀다. 이들에게 조기 수령은 당장 매달 들어갈 공과금과 약값을 대기 위한 마지막 버팀목이었다.
수급자 명단에는 이들과 정반대 처지에 놓인 또 다른 집단도 있다. 월 100만원 이상을 받는 21만 6,221명(22.5%)의 고액 수급자들은 2022년 9월 건강보험료 개편으로 공적연금 소득이 연 2,000만원(월 166만 7,000원)을 넘으면 직장 자녀의 피부양자 자격을 잃기 때문에 연금을 줄여 조기 수령을 택했다. 피부양자에서 제외돼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 연금과 주택을 기준으로 매달 수십만원의 건강보험료를 내야 한다.
예컨대 원래 받을 연금이 월 180만원인 사람이 제때 받으면 연 소득 2,160만원으로 피부양자 자격을 잃고 매달 건보료로 20만원 안팎을 내야 한다. 하지만 20% 깎인 조기 수령을 신청해 월 144만원을 받으면 연 소득이 1,728만원으로 줄어 피부양자 자격을 지킨다. 제때 많이 받으면 건보료로 떼이고 감액해 적게 받으면 건보료를 내지 않는 구조 속에서 20만 명이 넘는 고액 수급자들은 건보료 부담을 피하려 스스로 연금을 줄여 받는 출구를 찾은 것이다.
이처럼 집단을 나누어 다시 들여다보면 조기노령연금 수급자 96만 명은 두 제도의 엇박자가 낳은 결과물이다. 한쪽에서는 정년 연장 없이 연금 수령 개시 연령만 늦춘 고용과 복지의 괴리가 은퇴자들을 소득 공백으로 밀어 넣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연금 수령액에 건강보험 피부양자 탈락 기준을 거칠게 얹은 체계 탓에 은퇴자들이 멀쩡한 연금을 스스로 깎아 받는 처지에 놓였다. 생활고 때문에 당겨 받는 사람과 절세를 위해 줄여 받는 사람이 한 지붕 아래 얽혔다. 은퇴 뒤 든든한 버팀목이어야 할 국민연금의 노후 소득 보장 원칙은 양쪽에서 함께 무너지고 말았다.
조기노령연금 급증을 "노인들의 불안 심리"나 "기금 고갈 우려"로 단순화하면 그 이면의 구조적 모순을 놓치게 된다. 2025년 7월 수급자가 100만 717명으로 처음 100만 명을 넘어선 지금, 소득 공백을 메울 정년 연장이나 일자리 대책 없이 연금 받는 나이만 미룬다면 제 살을 깎는 행렬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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