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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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만에 대륙 집어삼킨 혁명의 물결...구호보다 빨랐던 체제 파산

1848년 파리서 번진 연쇄 봉기...사상 전파보다 체제의 한계에 먼저 부딪혀

리지

혁명의 물결2분

1848년 2월 파리에서 군중이 튈르리 궁전으로 몰려들었다. 이에 루이 필리프 국왕은 왕관을 벗어던지고 영국으로 피신했다. 국왕이 피신하자 수레를 뒤집어 쌓은 바리케이드에서 혁명의 불길이 번졌다. 이 불길은 알프스와 라인강을 넘어 빈, 베를린, 밀라노 등 유럽 수십 개 도시의 왕정을 뒤흔들었다.

혁명의 물결은 짧은 기간에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로 터지는 일련의 봉기를 가리킨다. 한나 아렌트와 로버트 팔머 같은 학자들은 이 혁명의 물결이 일어난 원인을 깊이 분석했다. 실제로 대서양 혁명부터 유라시아의 입헌 혁명까지 거대한 파도는 주기적으로 역사를 덮쳤다. 이런 파도가 칠 때마다 새로운 사상이 대중을 일깨워 낡은 체제를 무너뜨린 것처럼 보였다.

1848년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 세워진 바리케이드. 위키피디아

하지만 파도의 동력을 사상의 전파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통신망도 없던 시절에 파리의 사상으로 언어가 다른 유럽 농민이 일제히 무장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사상의 불씨가 닿기 전에 장작은 이미 바싹 말라 있었다. 당시 유럽은 흉년과 감자 역병으로 식량 가격이 폭등했고 공업 불황으로 일자리가 급감한 상태였다.

정치학자 마크 카츠는 혁명을 대상을 무너뜨리려는 반대 혁명과 새 질서를 세우려는 지향 혁명으로 구분했다. 카츠의 분석처럼 혁명의 물결이 삽시간에 번진 배경에는 무너뜨릴 대상이 일치했다는 점이 있었다. 실제로 1848년 군중은 낡은 왕정을 무너뜨리는 데는 쉽게 뜻을 모았다. 하지만 왕정이 무너지자 각 계급의 이해관계가 갈라지며 전열이 흐트러졌다.

사상의 교류가 없던 전근대에도 혁명의 물결은 일어났다. 실제로 1640년대 영국 내전, 프랑스 프롱드의 난, 스페인 반란이 거의 동시에 터졌다. 이때 지구 반대편 명나라가 무너지고 청나라가 들어선 사건도 같은 궤적을 보였다. 이러한 연쇄 붕괴의 배후에는 소빙하기의 혹한과 기근이 있었다.

동시에 솟구친 물결은 그만큼 빠르게 가라앉았다. 당시 유럽을 뒤흔든 봄의 열기는 이듬해 군대의 진압 앞에 허탈하게 사그라들었다. 군대가 휩쓸고 간 자리에서 새 질서를 세우는 일은 저마다 표류했다. 결국 혁명의 물결은 이상의 승리라기보다 체제가 동시에 수명을 다한 파산 선고나 다름없었다.

바리케이드는 허물어졌지만 낡은 질서는 이전으로 온전히 돌아가지 못했다. 실제로 그 자리에는 농노제 폐지와 헌법 제정 같은 제도적 변화가 뒤따랐다. 이러한 변화를 이끈 힘은 외부의 사상보다 내부에서 임계점에 도달한 구조적 피로감이었다. 1848년 12월 프랑스는 보통선거로 공화국 대통령을 선출했고 오스트리아에서는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새 황제로 즉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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