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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토 유권자는 1% 미만...식민지 자치가 제국의 세금을 꺾었다
토지 소유로 성인 남성 과반 투표...150년 다진 의회 권력이 독립 불씨로
18세기 중엽 아메리카 식민지 마을의 투표소에 아침부터 주민들이 모였다. 대서양 건너 런던에서는 토지 귀족 등 성인 남성의 1% 미만만 투표권을 누렸다. 반면 버지니아와 매사추세츠에서는 땅을 일구는 자영농 남성의 과반이 줄을 섰다. 이들은 직접 거수로 의원을 선출했다.
식민지 시대는 유럽 이주민이 처음 발을 디딘 때부터 1776년 독립 선언까지를 가리킨다. 런던의 국왕은 각 식민지에 절대적 거부권을 지닌 총독을 파견했다. 하지만 바다 건너 본국의 명령은 힘을 쓰지 못했다. 이주민들은 각자의 마을에 주민 회의와 식민지 의회를 세웠다.
총독의 권한은 겉보기에만 컸다. 실제 권한은 식민지 의회가 쥐었다. 영국 하원의원 상당수가 자기 선거구에 살지 않던 것과 달리, 식민지 의원의 90%는 지역에 살았다. 이들은 도로와 학교를 짓고 지방세를 정했다. 총독의 한 해 봉급을 책정하는 권한도 이들에게 있었다.

프랑스와 벌인 북미 쟁탈전은 이 느슨한 관계를 흔들어 놓았다. 윌리엄 피트 영국 총리는 본토의 세금과 식민지 병력을 동원해 승리를 거뒀다. 전쟁은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영국 정부에는 막대한 빚이 남았다. 유럽에서 가장 무거운 세금을 내던 런던 지도층은 식민지가 국고에 거의 기여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영국 의회는 재정 적자를 메우려 1765년 인지세법을 통과시켰다. 식민지 주민들은 즉각 반발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뽑지 않은 런던 의회에는 세금을 부과할 권한이 없다고 맞섰다.
식민지 주민들은 이미 한 세기 넘게 자치를 누려왔다. 소송이 잦았던 식민지에서는 법률가들이 정치의 전면에 섰다. 런던이 보기에 식민지는 순종해야 할 변방 영토였다. 반면 식민지 주민들에게 지방 의회는 주권을 지키는 버팀목이었다.
성인 남성 과반이 표를 던지고 총독의 봉급을 결정하던 투표소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오랜 자치의 관성은 제국의 명령을 거부하는 단단한 성벽이 되었다.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됐다. 1776년 7월 4일 필라델피아에서 식민지 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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