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오늘의 역사

인도 형법 377조, 영국이 버린 158년 식민지 족쇄를 깬 헌법의 결단

1860년 영국이 만든 도덕 규범 본국은 1967년 폐기...13억 인도는 2018년 이제야 털어내

리지

2018년 9월 6일2분

2018년 9월 6일 인도 뉴델리 대법원. 대법관들은 판결문을 낭독하며 158년 동안 이어진 식민지 법률의 폐기를 알렸다. 영국 식민지 당국이 1860년 제정한 인도 형법 377조,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육체적 교합"을 최대 종신형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한 조항이다. 정작 법을 만든 영국은 반세기 전에 이미 폐기했다. 하지만 독립 인도 공화국은 한 세기 반 동안이나 이를 형법에 그대로 둔 채 살다가 이날 대법관 전원일치로 위헌을 선언했다. 대법원은 "역사는 이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그 가족들에게 사과를 빚졌다"라고 판결문에 적었다.

인도 형법 377조는 빅토리아 시대 대영제국이 피식민 사회를 통제하기 위해 심은 규율 장치다. 영국의 법학자 토머스 배빙턴 매콜리가 초안을 잡은 이 법은 여러 종교와 관습이 얽혀 있던 인도 대륙에 영국의 기독교적 도덕 기준을 심기 위한 수단이었다. 영국은 제국의 질서를 세운다는 명목으로 시민의 침실까지 국가의 형벌 아래 편입했다. 제국은 이 조항을 인도에만 두지 않았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케냐 등 수십 개 식민지 법전에 377조라는 번호까지 똑같이 그대로 옮겨 심었다. 제국의 법률 규격이 식민지 주민의 가장 내밀한 일상에 채운 표준형 족쇄가 됐다.

제도의 모순은 제국이 물러난 뒤에 본격화했다. 해방을 맞은 인도는 자유와 평등을 천명한 공화국 헌법을 세웠지만, 식민 통치자가 남기고 간 형법은 그대로 물려받았다. 제국이 떠난 자리에 관료제와 경찰 조직이 들어앉자 377조는 시민을 통제하는 가장 손쉬운 흉기로 쓰였다. 법정에 실제로 기소되는 사건은 적었지만 법조문에 적힌 중형의 위협은 경찰의 갈취와 협박, 사회적 배제의 수단이 됐다. 대법원이 지적했듯 수많은 시민이 "체포되지 않은 범죄자"라는 상시적인 불안 속에 살아야 했다. 한때 하급심 법원이 위헌 결정을 내리기도 했지만 대법원은 법률 개정이 의회의 몫이라며 발을 빼고 합헌으로 되돌렸다. 사법 소극주의가 식민지 유물의 수명을 연장했다.

인도 헌법의 기본권 조항이 제국의 화석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판결 한 해 전 대법원이 개인의 프라이버시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확인하면서 판이 흔들렸다. 마침내 대법원은 "다수의 도덕이 헌법적 도덕을 억누를 수 없다"라며 과거의 판단을 스스로 뒤집었다. 대법원은 성인 간의 합의된 사적 관계를 범죄로 다루는 행위가 헌법상 평등권과 자유권, 존엄성을 정면으로 침해해 "비이성적이고 자의적이며 명백히 위헌"이라고 명시했다. 제국의 법률이 강제한 도덕 독점이 헌법 앞에서 효력을 잃었다.

판결의 파장은 국경을 넘어 영연방 전역에 미쳤다. 대영제국이 세계 곳곳에 남긴 377조의 복제품들이 잇따라 흔들렸다. 판결 직후 싱가포르 법조계에서 위헌 소송이 제기됐고, 싱가포르 정부는 오랜 논의 끝에 형법 377A조를 법전에서 완전히 삭제했다. 인도 내부에서도 변화는 멈추지 않았다. 대법원은 복지 혜택과 법적 보호의 대상이 되는 가족의 개념을 전통적 혼인 바깥으로 넓히는 판결을 이어갔다. 그리고 2024년 7월 1일, 인도는 식민지 시절 제정된 형법을 전면 폐지하고 새로운 국가 형법을 시행하며 제377조라는 이름 자체를 역사 속으로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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