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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신문도 알았던 온실효과...과학계는 왜 반세기 묵살했나
포화 가설에 갇혀 40년 허비...1950년대 컴퓨터 계산으로 반전

1912년 뉴질랜드의 한 신문 지면에 단신 기사가 실렸다. "로드니 앤드 오타마테아 타임스"라는 지역 주간지였다. 신문은 세계 공장들이 태운 석탄 20억 톤이 70억 톤의 이산화탄소가 되어 지구를 감싸는 "담요"가 된다고 전했다.
기후변화는 열을 가두는 온실가스가 복사열을 붙잡아 지구 평균 기온이 상승하는 현상을 말한다. 19세기 중반 연구원 유니스 푸트는 이산화탄소가 열을 오래 보존하는 성질을 밝혔다. 뒤이어 화학 연구원 스반테 아레니우스가 계산을 이어받았다. 그는 대기 중 탄소가 두 배로 늘면 지구 기온이 5도 오른다는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주류 과학계는 이 계산을 반세기 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학자들은 지구 대기가 이미 적외선을 전부 흡수하고 있다는 포화 가설을 굳게 믿었다. 열을 빨아들이는 빛의 파장이 이미 꽉 차 탄소를 더 쏟아부어도 온도는 오르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바다가 남는 탄소를 모두 삼켜 기후를 조절할 것이라는 낙관도 힘을 보탰다.
영국의 기계 엔지니어 가이 캘런더는 홀로 반박에 나섰다. 그는 관측 자료를 모아 기온과 탄소 농도가 실제로 오르고 있음을 밝혔다. 하지만 학계는 그의 계산을 외면했다. 온실효과는 이미 포화 상태라는 오랜 반론만 반복됐다.

반세기 뒤 등장한 초기 컴퓨터가 포화 가설을 허물었다. 물리학 연구원 길버트 플라스는 대기를 여러 층으로 쪼개 열의 이동을 추적했다. 공기가 희박한 성층권에서는 탄소가 늘어날수록 열이 우주로 빠져나가지 못했다. 대기 전체가 적외선을 다 흡수했다는 학계의 믿음은 계산 착오로 드러났다.
바다가 모든 탄소를 흡수한다는 기대도 빗나갔다. 해양 연구원 로저 레벨은 해수의 탄소 흡수 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증명했다. 그의 지원을 받은 화학 연구원 찰스 킬링은 마우나로아산 정상에 관측소를 세웠다. 그가 매일 기록한 수치가 해마다 계단식으로 치솟으며 대기에 탄소가 쌓이고 있음이 입증됐다.
과학계는 뒤늦게 이 현상을 연구 과제로 삼았다. 당시 학자들은 "부주의한 기후 조작"이라 불렀고, 이후 기후 연구원 월리스 브뢰커가 "지구 온난화"라는 이름을 제시했다. 뉴질랜드 신문이 지목했던 연간 석탄 소비량 20억 톤은 오늘날 87억 톤으로 늘었다. 최근 마우나로아 관측소가 측정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426ppm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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