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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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와 결혼하면 무죄...1981년까지 살아남은 신부 납치 면책법

1965년 시칠리아 소녀의 혼인 거부...지참금 회피와 순결 규범에 가려진 제도

리지

신부 납치2분

1965년 12월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작은 마을 알카모에서 열일곱 살 여성 프랑카 비올라가 괴한들에게 납치됐다. 주동자는 청혼을 거절당한 알카모의 불량배 필리포 멜로디아였다. 멜로디아는 일당 12명을 모아 비올라를 끌고 가 8일 동안 감금하고 성폭행했다. 당시 이탈리아 형법 544조는 가해자가 피해 여성과 혼인하면 모든 형벌을 면제하는 "복권 결혼"을 인정하고 있었다. 가문의 명예를 위해 범죄자와 혼인하라는 마을 사람들의 압박 속에서도 비올라는 법정에 서서 "나는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다"라고 외치며 혼인을 거부했다.

신부 납치는 남성이 혼인을 목적으로 여성을 강제로 데려가는 악습이다. 학계에서는 납치 결혼이나 포로 결혼으로도 부른다. 고대 로마 건국 설화인 사비니 여인들의 약탈에서 보듯 이 행위는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이어졌다. 현대 법률은 이를 중대한 성범죄로 규정하지만, 세계 여러 지역에서는 여전히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지고 있다.

약탈혼이 오랫동안 이어진 배경에는 결혼에 따르는 막대한 경제적 부담이 자리 잡고 있다.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농촌 사회에서는 신랑 측이 신부 가문에 지불해야 하는 신부대가 혼인의 가장 큰 장벽이었다. 가난한 남성은 가축과 현금을 감당하지 못해 납치를 택했다. 혼수 비용을 치를 돈이 없는 연인이 부모의 승낙을 얻기 위해 납치를 가장해 함께 도망치는 위장 납치를 벌이기도 했다.

남미의 약탈혼을 묘사한 독일 화가 요한 모리츠 루겐다스의 유화 납치. 위키피디아

범죄가 혼인으로 성립되는 과정에는 가문의 체면을 앞세운 공동체의 압박이 작용했다. 키르기스스탄의 관행에서는 납치된 여성이 남성의 집에 들어서면 시어머니와 친척 여성들이 머리에 흰 스카프를 강제로 씌운다. 마을 사람들은 다른 남성의 집에서 밤을 보낸 여성이 순결을 잃었다는 이유로 거센 사회적 낙인을 찍었다. 친정 부모조차 "돌은 떨어진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며 딸의 귀가를 막고 혼인을 강요하는 일이 되풀이됐다.

국가 법률 역시 이 왜곡된 규범을 처벌하기보다 추인하는 구실을 했다. 이탈리아의 복권 결혼처럼 피해 여성과의 혼인을 형사 처벌의 면죄부로 삼는 조항은 지중해와 중동 여러 나라의 근대 형법전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법 당국은 성폭력을 개인의 존엄성 훼손보다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사건으로 다루었다. 혼인을 치르고 달아나 은신처에 숨던 고대 약탈혼의 풍습이 현대 신혼여행의 기원으로 남았다는 학설이 나올 만큼, 폭력은 일상의 제도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비올라의 거부로 시작된 재판은 이탈리아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주동자 멜로디아는 징역 11년을 선고받았다. 비올라는 어릴 적 친구와 새로 혼인하며 대통령과 교황의 축하를 받았다. 하지만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던 이탈리아 형법 544조가 법전에서 공식 폐지되기까지는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1981년이 되어서였다. 지중해 섬나라 몰타는 2018년에야 가해자의 혼인 감면 조항을 법률에서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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