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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 연대가 374년 늙은 자리엔 나무가 있었다...틈 메운 석고가 태운 이집트 숲
돌 틈 메운 회반죽 구우려 수백 년 된 나무까지 땔감으로...썰매도 경사로 기둥도 나무
1984년 연구진은 이집트 기자에 선 가장 큰 피라미드인 대피라미드에서 시료를 떼어, 죽은 생물에 남은 탄소가 일정한 속도로 줄어드는 것을 재서 나이를 알아내는 방사성탄소 연대를 측정했다. 측정한 연대는 이집트 학자들이 역대 왕들의 재위 기간을 차례로 이어 붙여 짜 놓은 연대표보다 평균 374년 앞섰고, 돌을 쌓은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네 세기만큼 옛사람이 됐다. 연구진은 연대표를 의심하지 않고 시료를 의심했다.
피라미드 건설은 기원전 2600년 무렵 이집트 4왕조의 왕들이 자기 무덤으로 거대한 돌 구조물을 쌓아 올린 일이고, 그 가운데 쿠푸 왕이 기자에 세운 대피라미드가 가장 크다.
연대를 말한 것은 돌이 아니었다. 연구진이 떼어낸 시료는 피라미드 핵심부의 돌덩이와 그 사이를 메운 재료에서 나왔고, 거기 섞여 있던 것은 회반죽을 만들며 태운 나무였다. 대피라미드의 연대를 다시 측정하려고 꾸린 데이비드 코크 피라미드 방사성탄소 계획의 연구진은 "피라미드 건설자들이 회반죽을 준비하면서 수백 년 된 나무를 계속 땔감으로 썼다는 것은 있을 법하지 않다고 우리는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있을 법하지 않던 그 일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이 지금의 설명이다.
채석장에서 구리 연장으로 돌을 떼어내 끌고 와 앉혔다는 데까지는 이견이 없고, 다툼은 그 무거운 것을 어떻게 옮기고 어떻게 들어 올렸느냐에 몰려 있다. 회반죽은 그 다툼과 무관하다. 대피라미드를 지은 사람들은 바닥을 손끝에도 걸리지 않을 만큼 고르게 다듬어 놓고도 그 위에 올린 핵심부 돌은 거칠게 잘랐고, 그래서 벌어진 틈을 메우는 데 석고와 깨진 돌이 엄청나게 들어갔다. 돌과 돌 사이 빈자리를 메운 이 재료에는 붙이는 힘이 거의 없었지만, 그런데도 없으면 쌓은 것이 안정되지 않았다.
석고는 개기만 해서는 반죽이 되지 않아 불에 구워 물을 날려야 하고, 그러려면 나무를 때야 한다. 대피라미드 한 곳에만 돌이 230만 개 넘게 들어갔으니, 그 틈을 메울 반죽의 양이 곧 태워야 할 나무의 양이었다. 이집트 학자들은 대피라미드의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 결과를 두고 기자와 그보다 앞선 피라미드를 세우느라 이집트가 숲을 베어 쓰고 나뭇조각까지 모두 모았으리라고 본다. 고대 이집트에 나무는 거의 없었다.
땔감은 나무가 드는 여러 자리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돌은 썰매에 얹어 끌었고, 썰매가 지나갈 길에는 물을 부었다. 마크 레너와 로저 홉킨스는 작은 피라미드를 실제로 쌓아 보면서 돌을 나무 썰매에 얹고 나무를 깔아 만든 길 위로 끌었는데, 두 사람은 그 썰매와 길에 쓸 나무를 고대 이집트에서는 레바논에서 비싸게 들여왔어야 했으리라고 봤다. 경사로에 박아 밧줄을 걸던 기둥도, 꼭대기에서 돌 한쪽을 지레로 들어 올리고 끼우던 굄목도 나무였다.

그렇게 쓴 나무가 이미 오래된 것이었으므로 오랜 뒤에 측정한 연대는 실제보다 이르게 나왔고, 고고학에서는 이 어긋남을 "오래된 나무 문제(old wood problem)"라고 부른다. 태운 나무가 자란 때와 그 나무를 태운 때가 벌어질수록 측정값은 앞으로 밀린다. 1995년에 다시 측정했을 때도 연대는 여전히 100~200년 앞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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