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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탄이 판 흠이 속을 드러냈다...멘카우레 피라미드 계단꼴 구조
1196년 술탄의 일꾼들 하루 한두 개씩 뜯어내...한 해 토지세를 다 걷어도 한 층 못 헐어
1196년 11월 이집트의 술탄 알아지즈 우스만이 기자의 피라미드를 헐어 그 돌을 다미에타로 옮겨 성벽을 쌓으라고 명했다. 불려 온 일꾼들은 8개월을 매달렸지만 하루에 뜯어낸 돌은 많아야 한두 개였다. 쐐기와 지레로 밀고 밧줄로 끌어내린 돌은 떨어지면서 모래에 박혔다. 그것을 다시 파내는 데 또 큰 힘이 들었다.
술탄은 기자에 선 세 피라미드 가운데 가장 작은 멘카우레 피라미드를 골랐다. 이집트 옛 왕국 4왕조의 왕 멘카우레가 기원전 26세기에 자기 무덤으로 세운 것이다. 그때로부터 이미 3700년이 지났고, 부피는 쿠푸왕 대피라미드의 10분의 1쯤 된다. 15세기 이집트 역사가 알마크리지는 술탄이 두 큰 피라미드를 허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전해 들었다고 적었다. 그래서 가장 작은 것으로 만족했다는 것이다. 다만 밑에서 열여섯 단, 20m가 넘는 높이까지는 석회암보다 훨씬 단단한 붉은 화강암이었다. 그 화강암도 이집트 남쪽 아스완에서 실어 온 것이어서 겉을 두른 돌로는 가장 단단했다.
술탄이 일을 멈춘 이유는 돈이었다. 쉬지 않고 한 달을 매달려 떼어낸 돌이 몇 개뿐이었고 국고는 비어 있었다. 중세 아랍의 기록에는 그 셈이 남아 있다. 한 해 치 토지세를 다 걷어도 이 건물의 한 층을 헐 비용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술탄은 거기서 일을 접었다.
일꾼들이 판 자리에는 까닭이 있었다. 이들은 북쪽 면에서 20m 남짓한 높이를 골라 외장을 뜯었다. 이웃한 두 큰 피라미드에서 얻은 경험으로 입구가 그쯤에 있으리라 봤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판 자리를 위아래로 늘렸다. 진짜 입구는 그 흠의 거의 바로 아래, 외장 다섯째 단의 두께 속 바닥에서 4.2m 높이에 있었다. 1837년 이 피라미드를 파고든 영국인 탐사자 하워드 바이스가 그 입구를 찾아냈다.
그 8개월은 피라미드의 속을 드러냈다. 북쪽 면을 세로로 가른 자국이 그 쌓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 피라미드는 처음에 일곱에서 여덟 단씩을 한 층으로 삼은 계단꼴로 쌓였다. 나중에 계단 사이를 메우고 매끈한 외장을 입혀 진짜 피라미드가 됐다. 지금 그 큰 계단 가운데 셋이 보인다.
2024년 1월 이집트 유물을 관리하는 최고유물위원회와 일본 와세다대 조사단이 계획을 발표했다. 피라미드 밑에 흩어진 화강암 블록을 제자리에 다시 올리겠다는 것이었다. 위원회는 이 사업을 "21세기 이집트가 세계에 주는 선물"이라고 했다. 몇 주 뒤 이집트 당국이 부른 전문가단이 만장일치로 반대해 계획은 접혔다. 밑에 놓인 그 화강암은 상당수가 다듬다 만 채다. 멘카우레가 죽으면서 작업이 중간에 멈췄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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