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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주의 의원 5명 제명한 뉴욕 의회...첫 임대료 규제법 남겨
밀워키 상하수도와 타이타닉 무선통신망...수감 중 대선 91만 표까지

1920년 1월 뉴욕주 올버니 의사당에서 취임 선서를 마친 의원 5명이 단상 앞으로 불려 나왔다. 당시 뉴욕 주의회 의장 새디어스 스위트는 이들이 속한 정당인 사회주의당이 "참된 정당이 아니며 외래인과 미성년자의 단체일 뿐"이라고 선언했다. 주의회는 표결을 거쳐 140 대 6으로 5명의 자격을 정지하고 석 달 만에 정식으로 제명했다. 결국 유권자가 적법한 선거로 뽑은 의원을 당적만 보고 의사당 밖으로 쫓아낸 셈이었다.
미국 사회주의는 18세기와 19세기 유럽의 사상에 뿌리를 뒀다. 이 흐름은 공동체 실험과 노동운동을 거치며 독자적인 개혁을 모색했다. 실제로 1876년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창당한 사회주의노동당(SLP)은 유럽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들여온 독일계 이민자가 다수를 이뤘다. 창당 초기 3년 동안은 당 공식 언어가 독일어였다. 당시 출발선의 사회주의는 그만큼 이국적인 결사체에 가까웠다.
노동자들은 이념 논쟁보다 삶을 바꿀 현실적인 정책에 호응했다. 실제로 1897년 위스콘신주 셰보이건에서 구두 가게 주인 프레드 핵이 미국 최초의 사회주의자 공직자로 당선됐다. 이때 그는 야구단 감독 출신 동료 의원과 함께 공립학교를 짓고 상하수도를 시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이후 1912년 무렵에는 33개 도시에서 사회주의자 시장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시정을 맡은 사회주의자 당선자들은 깨끗한 수돗물과 공공위생, 공원 조성에 행정력을 집중했다. 이런 성과 덕분에 "하수도 사회주의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연방 의회에 처음 들어간 사회주의자 역시 재난의 빈틈을 메우는 입법을 앞세웠다. 실제로 1910년 위스콘신주에서 당선된 빅터 버거 하원의원은 미국 의회 최초로 노령연금 법안을 발의했다. 이후 1912년 4월 영국의 대형 여객선인 타이타닉호가 침몰했다. 그는 침몰 2주도 지나지 않아 무선통신망 국유화 법안을 제출했다. 상업용 무선통신의 무질서한 혼선이 조난 신호 전달을 가로막아 인명 피해를 키웠기 때문이었다.

뉴욕 주의회에서 쫓겨난 의원 5명이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바탕도 생활 정치였다. 이들은 1918년부터 뉴욕시 일대에서 세입자들의 집세 파업을 조직하고 지원하며 선거를 치렀다. 폭등하는 집세에 맞서 세입자 권리를 내건 싸움이었다. 이 싸움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임대료 규제법 제정으로 결실을 보았다. 하지만 법을 만든 주역들은 정작 의사당 안에서 의원직을 잃었다. 결국 적법한 정당 소속이 아니라는 억지 논리에 밀려 쫓겨난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연방 정부는 방첩법을 앞세웠다. 이에 반전 집회를 연 사회주의자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했다. 사회주의당이 지명한 대선 후보인 유진 뎁스는 오하이오주 캔턴에서 참전 반대 연설을 했다. 결국 그는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연방 검찰은 지도부를 가두고 집회를 막았다. 하지만 뎁스는 교도소에 수감된 채 치른 1920년 대통령 선거에서 90만 표 넘는 지지를 얻었다.
뉴욕 주의회는 1920년 4월 1일 표결을 거쳐 의원 5명을 끝내 의사당에서 몰아냈다. 하지만 이들이 세입자 파업을 이끌며 만들어낸 임대료 규제법은 그대로 시행에 들어갔다. 결국 그해 11월 유권자들은 교도소 수감자 신분인 뎁스에게 91만 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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