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그림 이야기

귀족을 지우고 서민을 채웠다...코스툼브리스모가 택한 일상의 피난처

체제의 모순 지우고 서민 일상에 집착...격변의 시대 피해 골목길 풍속으로 도피

리지

코스툼브리스모2분

마드리드의 출판인들은 1843년 풍속 화보집 "스스로를 그린 스페인 사람들"을 출간했다. 이 화보집은 시골 물장수부터 멋쟁이와 학생까지 서민의 일상을 판화와 글로 엮은 책이었다. 그런데 이 책에는 기이한 빈자리가 있었다. 나라를 다스리던 왕족과 귀족, 고위 성직자와 군인은 단 1명도 등장하지 않았다.

스페인 예술가들이 권력자를 비껴간 이 화풍이 바로 코스툼브리스모다. 코스툼브리스모는 19세기 스페인에서 예술가들이 거대한 정치 격변을 피해 서민의 일상 관습과 풍습을 기록한 풍속화 사조다. 당시 스페인은 외세의 침공과 왕위 계승 내전으로 혼란에 휩싸였다. 이에 지식인과 서민의 삶을 기록하는 화가들은 정치 갈등 대신 서민의 일상 관습에 주목했다. 이들은 체제를 비판하는 대신 골목길 인물의 옷차림을 관찰하며 일상 풍경을 담은 풍속화를 그렸다.

이 풍속화의 흐름은 두 도시를 중심으로 나뉘었다. 수도 마드리드의 화가들은 고야의 영향을 받아 거친 붓질로 투우와 뒷골목 싸움을 풍자했다. 반면 남부 안달루시아의 세비야 화가들은 옛 거장 무리요의 전통을 따랐다. 이들은 안개 낀 듯 부드러운 대기 속에 투우사와 집시를 서정적으로 담아냈다.

호세 히메네스 아란다의 "투우장의 한 장면". 출처는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

세비야 화가들이 서민 풍속을 곱게 다듬은 배경에는 미술 시장이 있었다. 당시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부유한 여행객들은 이국적인 스페인의 정경을 찾았다. 화가들은 종교 행렬과 전통 의상을 낭만적인 풍속화로 가공해 유럽 여행객들에게 판매했다. 결국 서민의 가난과 계층 갈등은 지워지고 매혹적인 관광 상품만 남았다.

코스툼브리스모는 대서양을 건너 스페인어권 아메리카로 퍼져 나갔다. 멕시코에서는 독립 이후 인종 계급을 나누던 식민지의 카스타 회화가 사라졌다. 멕시코의 풍속화가인 호세 아구스틴 아리에타는 카스타 회화의 빈자리를 주막의 술꾼과 시장 상인으로 채웠다. 그는 인종의 위계 대신 서민의 일상을 묘사하며 신생국의 정체성을 세우려 했다.

호세 아구스틴 아리에타의 "풀케 주막의 모임". 사진 위키피디아, CC BY-SA

하지만 화가들이 집착한 세부 묘사는 시대의 모순을 감당하지 못한 도피처였다. 문학평론가 후안 로페스 모리야스는 이 같은 풍속 묘사를 냉정하게 짚었다. 그는 "현대 세계의 격변을 이해하지 못한 이들이 일상으로 도피한 방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독립 이후에도 토지 불평등과 계층 갈등은 계속됐다. 토지 불평등과 계층 갈등이라는 모순을 직시할 힘이 없는 자리에서 서민의 술잔은 가장 안전한 소재가 됐다.

사소한 일상에서 안식을 얻으려는 시선은 오늘날 도시의 여행자들에게도 이어진다. 정치 갈등에 지친 사람들은 대형 미술관 대신 낡은 골목길의 노포와 포장마차를 찾는다. 이들은 마드리드의 화가들이 권력자를 지우고 서민의 일상 뒤로 숨어들었던 것처럼 골목길을 걷는다. 당시 화보집을 냈던 작가 안토니오 플로레스는 수년 뒤 스스로를 그릴 수 없는 서민 12명의 위임을 받았다며 책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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