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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스홈 공장 한 곳 불타 나무 스틱 품귀...라크로스, 2년 만에 플라스틱 전환

모호크 보호구역의 공장 한 곳이 세계 라크로스 스틱 97%까지 깎았다...1968년 화재 두 해 뒤 첫 플라스틱 머리 특허

리지

라크로스 스틱2분

1968년 콘월섬의 공장 한 곳이 불에 탔다. 아크웨사스네 모호크 보호구역에 있던 치스홈 라크로스 제조사다. 나무를 깎아 스틱을 만드는 장인을 스틱메이커라 한다. 모호크 사람으로만 수십 명이 이곳에서 일했다. 한때 세계 라크로스 스틱의 97%까지 이 공장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 팀과 브라인 같은 용품 업체도 여기서 스틱을 받아 갔다.

라크로스 스틱은 라크로스 경기에서 선수가 공을 잡고 옮기고 던지는 데 쓰는 유일한 도구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이 나무를 깎아 만들어 쓰던 것이다.

라크로스 스틱은 크로스라고도 한다. 대강 삼각형인 머리에 느슨한 그물을 매어 공을 받아 물고 다닌다. 그러다 던지거나 쏘고 상대의 스틱을 때려 공을 떨어뜨린다. 히코리를 증기로 쪄서 머리를 굽힌다. 머리와 측벽에 구멍을 뚫어 실을 꿴다. 측벽은 머리 테두리에서 그물을 지탱하는 양쪽 옆면이다. 실을 수지에 담가 굳히고 가죽 러너 위로 나일론 실을 엮으면 공을 담는 포켓이 된다.

전통 나무 라크로스 스틱 한 쌍. 사진 DMighton, CC BY-SA 3.0, 위키피디아

북미 오대호 둘레에는 원주민 집단인 그레이트레이크스 부족들이 살았다. 이들이 쓴 초기 막대는 그물 없는 커다란 나무 숟가락 모양이었다. 그다음 막대는 한쪽 끝이 지름 4~5인치 원으로 굽어 있었다. 그 원에 나무뿌리 섬유를 엮어 그물을 만들었고 나중에는 사슴 힘줄을 썼다. 그물이 팽팽했으므로 선수들은 테니스를 치듯 공을 때릴 수 있었다. 치스홈 공장을 운영한 모호크는 원주민 연맹인 이로쿼이에 속했다. 이로쿼이의 머리는 원형 대신 U자였고 오늘의 나무 스틱과 닮았다.

프랭크 랠리는 19세기 말 첫 라크로스 스틱 공장을 열었다. 그는 원주민 스틱메이커들을 고용해 조립라인 방식으로 공장을 운영했다. 대공황 때 콜린 치스홈이 랠리 공장 출신인 라운드포인트 형제와 경쟁 회사를 차렸다. 2차대전 중 랠리가 문을 닫으며 설비를 치스홈의 회사에 팔았다.

공장이 불타면서 스틱이 모자랐다. 이 품귀가 플라스틱 전환을 앞당겼다. 1970년 4월 STX가 첫 플라스틱 머리 특허를 받았다. 볼티모어의 플라스틱 회사에서 일하던 라크로스 선수들이 차린 회사였다. 그 머리는 좌우가 대칭이었다. 손잡이에 따라 설계가 갈리던 전통 스틱의 구분이 없어졌다.

플라스틱 머리는 틀에 부어 찍어낸다. 이렇게 성형한 머리의 치수는 연맹 규정이 정한다. 미국대학체육협회(NCAA)는 남자 필드 선수의 머리를 가장 넓은 곳 6~10인치로 묶었다. 공이 머리에 끼지 않도록 측벽 사이를 3인치보다 좁히지도 못하게 했다. 국제 연맹 세계라크로스의 여자 경기 규정은 포켓 깊이를 자로 재는 대신 공을 얹어 본다. 공의 윗면이 측벽 위 테두리보다 위에 남아 있으면 합법이다.

원주민 선수는 태어나면 스틱을 받고 죽으면 그 스틱과 함께 묻혔다. 그 관습은 지금도 어느 정도 남아 있다. 다만 플라스틱으로 성형한 현대 스틱은 원주민에게 선물로 건네지도, 함께 묻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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