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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보다 많았던 흑인 공직자...연방군 철수에 지워진 표
3년 만에 공직 15% 차지한 해방 노예...잡화점 빚과 연방군 철수로 원점

1867년 초 미국 남부에서 공직을 맡은 흑인은 1명도 없었다. 불과 3년 만에 흑인은 남부 전체 공직자의 15%를 차지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회에서는 흑인 대의원이 백인보다 많았다. 한 세기가 지난 1990년 미국 남부 흑인 공직자 비율보다도 높은 수준이었다.
미국사에서 "재건 시대"는 남북전쟁 직후부터 1877년까지 연방 전체의 통합을 이끌고 남부의 옛 노예제 질서를 새로 짠 10여 년을 뜻한다. 연방 의회는 수정헌법을 잇달아 통과시켜 흑인에게 시민권과 참정권을 부여했고 연방군은 남부에 군관구를 설치해 백인 보수파의 저항을 누르며 새 주 헌법 제정을 지원했다.
남부 백인 가운데 대규모 목화 농장을 운영하는 농장주들은 인종보다 세금 때문에 총칼을 들고 맞섰다. 전쟁 전 남부의 광대한 농지를 소유한 대지주들은 토지 가액을 스스로 적어 내는 방식으로 재산세를 거의 내지 않았다. 새로 들어선 주의회가 학교와 철도를 짓겠다며 세율을 열 배 넘게 올리자 백인 농장주들은 "사실상의 토지 몰수"라며 납세 거부 운동을 벌였다.

연방 의회는 흑인에게 투표권을 주었지만 농사지을 땅은 주지 않았다. 남부 시골에 들어선 지역 잡화점 상인들이 은행과 무역상을 겸하며 그 빈자리를 메웠다. 해방 농민들은 생필품과 농기구를 잡화점에서 외상으로 사고 가을에 거둘 목화를 통째로 담보로 잡혔지만 수확을 마쳐도 빚이 남아 소작인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해방 농민이 얻은 정치적 권리는 오직 연방군 주둔에 기대어 있었다. 1876년 대선에서 선거인단 확보를 두고 팽팽하게 맞서자 워싱턴 웜리 호텔에서 비밀 협상이 열렸다. 공화당 헤이스 후보에게 대통령 자리를 넘기는 대가로 남부에 주둔하던 연방군을 완전히 철수하기로 남부 민주당과 합의했다. 이른바 "1877년 타협"이었다.
연방군이 철수하자 남부 공직자의 15%를 차지했던 흑인 정치인들은 단 몇 년 만에 의사당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흑인 지도자 부커 T. 워싱턴은 훗날 "경제적 자립 대신 정치적 수단과 민권법부터 앞세워 실패했다"고 회고했다. 남부 각 주는 인두세와 문해력 시험을 도입했다. 1890년 마지막 투표권 보호 법안이 연방 의회에서 부결되면서 남부 흑인의 참정권은 다시 최저 수준으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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