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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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유전 챙긴 7인의 올리가르히...크렘린궁에 바친 복종과 몰락

1996년 국가 재정난 틈타 알짜 기업 독식...푸틴 집권 뒤 복종 거부한 재벌 숙청

리지

올리가르히2분

Illustration by Gemini

1996년 러시아 대선을 앞두고 재정이 바닥난 옐친 정부는 국유 기업 주식을 담보로 민간 은행에서 선거 자금을 빌렸다. 이때 미하일 호도르콥스키와 보리스 베레좁스키를 비롯한 청년 은행가들이 채권자로 나섰다. 이들은 정부에 자금을 대고 시베리아 유전과 제철소 지분을 담보로 확보했다. 이후 정부가 빚을 갚지 못하자 핵심 기업들은 경매를 거쳐 채권자들에게 헐값으로 매각됐다.

올리가르히는 구소련 붕괴 후 국유 자산을 차지해 급성장한 신흥 재벌이다. 주식담보대출로 알짜 기업을 차지한 금융인 7명은 스스로를 "세미반키르시나", 곧 7인의 은행가라 칭했다. 이 명칭은 17세기 모스크바 공국을 좌우하던 7인의 대귀족 집단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당시 이들은 러시아 전체 금융 자산의 70%를 통제하며 국정 운영과 내각 인사까지 좌우했다. 이들은 최고 권력자에게 자금을 대며 국가의 지배자로 군림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집권하면서 관계가 완전히 달라졌다. 푸틴은 올리가르히를 크렘린궁으로 불러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조건으로 기존 재산을 인정하겠다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최대 석유회사 유코스를 이끌던 호도르콥스키는 이 제안을 거부하고 정치 세력을 후원하며 독자 행보를 걸었다. 이후 러시아 당국은 공항 활주로에서 그를 체포했다. 호도르콥스키는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150억 달러 가치의 유코스는 해체돼 국영 기업에 인수됐다.

2002년 12월 크렘린궁에서 만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미하일 호도르콥스키 유코스 회장. 사진 대통령 공보실, CC BY 4.0, 위키피디아

올리가르히가 밀려난 자리는 푸틴의 측근들이 차지했다. 이때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절 동료와 안보 부처 출신들이 진입하며 "실로바르히"라는 신흥 세력이 형성됐다. 푸틴의 유도 스승인 아르카디 로텐베르크를 비롯한 측근들이 국가 발주 사업과 국영은행 대출을 독점했다. 이들은 국가를 통제하던 과거의 과두 지배층과 달리, 크렘린궁이 배분하는 사업권에 생사를 맡긴 대리인에 불과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서방의 대규모 제재가 시작되자 올리가르히는 호화 요트의 위치추적 장치를 끄고 자산을 해외로 옮겼다. 외국 비거주자 자격으로 두바이 부동산을 사들인 자금만 한 해 63억 달러를 넘어섰다. 국가 유전을 헐값에 차지해 권력을 휘둘렀던 7인의 은행가는 망명과 수감, 자산 몰수를 거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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