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붉은 군대 탈영해 숲으로 숨은 농민들...레닌 굴복시키고 시장 되살린 녹군
수확철마다 전선 벗어나 숲으로...곡물 징발 멈추고 신경제정책 이끌어내
1919년 가을 수확철이 다가오자 붉은 군대에서 복무하던 농민 병사들이 총을 들고 전선을 벗어났다. 이들은 고향 마을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밭에서 곡식을 거뒀다. 하지만 러시아 혁명 정부를 장악한 볼셰비키의 식량 징발대가 곡물을 빼앗으러 들이닥쳤다. 농민들은 소총을 챙겨 들고 숲속으로 숨어들었다. 먼 도시의 혁명 구호보다 눈앞에 익어가는 밀 이삭을 지키는 일이 더 절실했다.
녹군은 러시아 내전기 볼셰비키와 제정 복귀를 노린 반혁명 백군 모두에 맞서 일어난 농민 무장 세력이다. 강제 징집을 피해 숲으로 숨어든 탈영병들이 스스로 자위대를 꾸리면서 얻은 이름이었다. 농민들은 옛 지주를 데려와 토지를 회수하려던 백군을 믿지 않았다. 군량미를 채우려 종자까지 빼앗아간 붉은 군대 역시 약탈자로 보기는 마찬가지였다.
숲으로 숨어든 농민 세력은 정규군을 압도할 정도로 컸다. 한 해 동안 붉은 군대에서 빠져나간 탈영병만 200만 명을 넘어섰다. 숲속 녹군은 50만 명을 웃돌며 러시아 전역의 후방을 장악했다. 반면 안톤 데니킨 장군이 지휘한 백군 주력 부대는 15만 명 안팎에 그쳤다.
농민들은 외부 군대의 진입을 막기 위해 마을 어귀에 바리케이드를 쳤다. 마을마다 자치 조직을 세우고 스스로 "중립 공화국"이라 선언했다. 이들은 철도를 뜯어내고 전신선을 끊어 식량 운송망을 차단했다.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징발대를 공격했다.

농민들의 저항으로 도시의 식량 공급이 끊기자 소비에트 정부는 큰 혼란에 빠졌다. 수도 페트로그라드의 인구는 200만 명에서 50만 명으로 줄었다. 원료가 바닥난 공장들은 줄줄이 가동을 멈췄다. 굶주린 노동자들의 파업이 번졌고, 혁명의 거점이었던 크론슈타트 해군 기지 수병들의 반란까지 터져 나왔다. 정권은 중대한 위기에 직면했다.
서방 열강의 지원을 받던 백군을 물리친 블라디미르 레닌도 결국 물러섰다. 숲속 농민군의 완강한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볼셰비키 정부는 1921년 봄 당대회에서 강제 징발을 전격 폐지했다. 세금을 낸 뒤 남은 곡물을 시장에서 자유롭게 처분하도록 허용하는 신경제정책을 채택했다. 영국 역사학자이자 러시아 혁명사 연구자인 올랜도 파이지스는 이를 두고 "볼셰비키가 농민에게 항복했다"고 적었다.
가을 들판의 수확을 지키기 위해 숲으로 숨어들었던 농민들은 합법적인 장터가 열리자 서서히 총을 내려놓았다. 녹군에게는 전국적인 사령부도, 장기적인 정치 프로그램도 없었다. 목표였던 농토와 장터를 되찾자 이들은 본래의 농촌 공동체로 돌아갔다. 강제 징발이 철회되고 시장 거래가 허용되자, 군대에서 공식적으로 제대해 고향 밭으로 복귀한 농민 병사는 250만 명에 이르렀다.
이 글이 어땠나요?
눌러 주시면 다음 글을 쓸 때 소중한 참고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