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사설 터널 파다 무너진 미시시피강...세계 제분 수도 살린 콘크리트
1869년 세인트앤서니 폭포 터널 붕괴...공병단 콘크리트 차수벽으로 제분 수력 사수

1869년 10월 5일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앤서니 폭포 아래에서 미시시피강 강바닥을 파고 들어가던 노동자들의 머리 위로 단단한 석회암 천장이 갈라졌다. 이 공사는 지역 사업가 윌리엄 이스트먼과 존 메리엄이 폭포 상류 니콜렛섬에 공장을 짓고 수력을 끌어오려고 길게 파 내려가던 사설 방수로 공사였다. 미시시피강의 거센 본류가 갈라진 틈새로 쏟아져 들어가면서 강바닥 전체가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오늘날 미시시피강에 남은 유일한 폭포는 자연의 물길을 막지 못하고 공사 중이던 터널이 무너지자 연방정부가 콘크리트로 지어 올린 인공 구조물이다.
이스트먼 터널은 1868년 사업가 윌리엄 이스트먼과 존 메리엄이 폭포 상류 니콜렛섬 일대로 수력을 끌어오려 착공한 사설 수로 시설이었다. 세인트앤서니 폭포는 단단한 석회암 암반 밑으로 강물이 떨어지는 미시시피강 유일의 자연 폭포로 미네소타주의 신흥 공업 도시 미니애폴리스의 여러 산업 시설을 돌리던 핵심 동력원이었다.
터널 속으로 들이닥친 강물은 무른 사암층을 빠르게 파헤치며 폭포 주변 지반을 무너뜨렸다. 폭포 옆 헤너핀섬 일부가 땅속으로 꺼져 내렸고 상류 지반도 주저앉기 시작했다. 제빵사, 의사, 변호사를 비롯한 미니애폴리스 주민 수백 명이 일손을 놓고 달려와 목재와 바위를 쏟아부었지만 거센 물살은 임시 제방을 흔적도 없이 휩쓸어 갔다. 이듬해 봄 홍수에는 강변 제분소와 목공소, 밀 창고마저 차례로 강물에 휩쓸려 무너졌다.
폭포가 무너져 평범한 급류로 바뀌면 도시 전체가 멈춰 설 위기였다. 미니애폴리스는 높이 15미터 폭포 낙차에서 나오는 수력으로 제분소와 제재소를 돌리며 성장한 도시였다. 민간 사업자의 무리한 터널 굴착이 부른 사고를 두고 공장주들을 세금으로 돕는다는 반발이 일자 연방정부는 미시시피강의 "항행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워 공병단을 투입했다.
육군 공병단은 강바닥 구조를 전면 개조하는 공사에 착수했다. 공병단은 폭포 상류 강바닥 석회암 밑으로 거대한 지하 콘크리트 차수벽을 세워 지하로 빠져나가는 물길을 끊었다. 폭포 전면에는 통나무로 거대한 경사면을 덮어 강물이 사암층을 더 깎아내지 못하도록 막았다. 이 응급 복구에 미국 연방정부는 61만 5,000달러를 투입했고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앤서니시도 33만 달러를 부담했다.
자연이 오랜 세월에 걸쳐 깎아낸 암벽은 거대한 목재와 콘크리트 사면으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수력의 붕괴를 막아낸 미니애폴리스는 그 뒤 반세기 동안 세계 제분 수도로 전성기를 누렸다. 훗날 제너럴 밀스로 이름을 바꾼 워시번 제분소와 필스버리가 이 안정된 동력 위에서 거대 식품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미국 최대의 곡물 가공 기지가 완성됐다. 민간의 무리한 개발이 부른 위기를 국가가 콘크리트로 봉합해 도시의 핵심 산업을 지켜냈다.
목재로 덮었던 폭포 경사면은 훗날 홍수를 겪은 뒤 두꺼운 콘크리트로 다시 덮였다. 연방정부가 공병단 투입 명분으로 내세웠던 상류 운하와 갑문은 외래 어종의 유입을 막기 위해 2015년 영구 폐쇄됐다. 미시시피강의 유일한 폭포 자리에는 물살을 흘려보내는 콘크리트 경사면과 옛 제분소 벽체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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