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오늘의 역사

1인승에 셋 탄 보스호트, 우주복 벗고 오른 24시간

미국보다 먼저 띄우려 사출좌석 제거...소유즈는 감압 사고 뒤 2인승으로 개조하고 여압복 도입

리지

1964년 10월 12일2분

1964년 10월 12일 소련은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세계 최초로 3명이 탑승한 유인 우주선 보스호트 1호를 발사체 1대에 실어 발사했다. 조종사 블라디미르 코마로프와 엔지니어 콘스탄틴 페옥티스토프, 의사 보리스 예고로프는 두꺼운 우주복 대신 가벼운 비행복 차림으로 탑승했다.

원래 1명만 타도록 만든 캡슐에는 3명이 부피가 큰 여압복을 입고 탑승할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정상 비행에서는 캡슐 내부 압력이 유지되지만 공기가 새어 압력이 떨어지면 승무원은 몸 주변의 압력을 유지하는 여압복으로 보호받는다. 보스호트 1호의 승무원 3명은 여압복 없이 캡슐 내부 압력 유지에 의존했다.

보스호트 1호는 유리 가가린을 태웠던 우주선 보스토크의 귀환 모듈인 캡슐을 개조한 기체였다. 보스호트 1호 설계국은 3명이 탑승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조종사용 비상 탈출 사출좌석을 제거했다. 설계국은 기존 좌석과 직각을 이루는 방향으로 좁은 고정 좌석 3개를 빽빽하게 설치했다.

보스호트 1호 승무원들은 사출좌석도 별도의 비상탈출 시스템도 없어 발사 직후 로켓에 사고가 발생하면 지상으로 탈출할 방법이 없었다. 보스호트 1호의 비행은 최소한의 안전 탈출 장치마저 제거한 채 감행한 모험이었다.

소련은 정치적 조급함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며 무리한 설계를 추진했다. 소련 최고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가 미국이 이듬해 봄 2인승 제미니 우주선을 발사하기 전에 소련이 먼저 다인승 우주비행에 성공해야 한다고 재촉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아폴로 계획이 3인승을 목표로 삼고 있었으므로 소련은 3명을 태우면 미국의 후속 계획까지 앞서는 선전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보스호트 1호는 지구를 16바퀴 돈 뒤 이튿날인 10월 13일 카자흐스탄 초원에 무사히 착륙했다. 보스호트 1호의 비행 시간은 24시간 17분이었다.

1971년 소련의 유인 우주선 소유즈 11호의 승무원 3명도 여압복 없이 우주선에 탑승했다. 이 승무원들은 우주정거장에서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던 중 대기권 진입 전 귀환 모듈인 캡슐과 다른 모듈을 분리할 때 생긴 충격으로 압력 평형 밸브가 열리는 사고를 겪었다. 캡슐의 공기가 우주로 빠져나가면서 내부 압력이 낮아졌다. 승무원들은 여압복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3명 모두 사망했다.

사고 뒤 소련은 한동안 소유즈 우주선의 탑승 인원을 3명에서 2명으로 줄여 여압복을 입을 공간을 확보했다. 소련은 발사와 착륙 때 입는 여압복으로 소콜을 도입해 1973년 9월 27일 발사한 소유즈 12호에서 새 장비를 실제 유인 비행에 적용했다. 소유즈 12호의 두 승무원은 이 비행에서 소콜 여압복을 시험하고 착용한 채 지구로 돌아왔다.

이후 여압복의 크기를 줄이도록 설계를 바꾸면서 소유즈 승무원 3명이 다시 여압복을 입고 탑승할 수 있게 됐다. 소유즈 승무원들은 최근 귀환 준비 때도 소콜 여압복을 사용한다. 2026년 7월 16일 소유즈 MS-28로 지구에 돌아갈 승무원 3명은 귀환 때 입을 소콜 여압복의 공기 누출 여부를 점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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