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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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시장 감독을 요구했던 신자유주의

독일의 경쟁 질서 구상을 가리키던 이름은 칠레에서 민영화와 규제 완화를 비판하는 말로 쓰였다.

리지

신자유주의3분

Illustration by Gemini

1938년 8월 프랑스 파리 팔레루아얄의 국제지적협력연구소에 학자와 언론인들이 모였다. 독일 경제학자 알렉산더 뤼스토는 국가가 시장의 경쟁 규칙을 정하고 독점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 구상을 내건 새로운 운동의 명칭으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를 제안했다. 이 모임은 미국 언론인 월터 리프만의 저서가 프랑스어로 출간된 것을 계기로 열렸다. 참석자들은 대공황과 전체주의의 득세 속에서 자유주의를 어떻게 다시 확립할지 논의했다.

뤼스토는 대공황을 겪으며 19세기식 자유방임이 실패했다고 판단했다. 그와 뜻을 같이한 참석자들은 국가가 시장을 감독해 경쟁을 보장해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회의 참석자들의 진단이 모두 같지는 않았다.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국가의 개입과 보호정책에서 독점과 카르텔의 원인을 찾았다. 국가가 시장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뤼스토와 시장 진입 장벽을 없애는 데 국가의 역할을 한정하려던 미제스 사이에는 견해차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뒤에는 독일의 발터 오이켄과 빌헬름 뢰프케 등 질서자유주의(Ordoliberalism) 계열 경제학자들의 구상이 전후 서독 사회적 시장경제의 사상적 토대가 됐다. 이들은 정부의 기업 직접 운영과 가격 통제를 경계하면서도 독점과 카르텔을 억제할 법률과 감독 기구를 중요하게 여겼다. 오이켄은 사회 보장과 사회 정의를 시대의 중요한 관심사로 꼽았고, 일부 경제학자들은 제한적인 소득 재분배에도 찬성했다.

국가가 경쟁을 보장해야 한다는 구상은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1951년 에세이에도 나온다. 프리드먼은 신자유주의가 19세기식 자유방임을 대신해 경쟁 질서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썼다. 그는 기업이 경쟁자의 진입을 막거나 담합으로 거래를 제한하지 못하도록 국가가 규칙을 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프리드먼은 독점 방지와 통화 안정, 극심한 빈곤의 구제도 국가의 역할로 봤다.

1960년대에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시장경제를 지지하던 지식인들도 전후 독일 모델에 관심을 보였다. 이들이 사용한 스페인어 "네올리베랄리스모(neoliberalismo)"는 독일의 신자유주의를 옮긴 말이었다. 당시 이 말은 국가가 독점을 막고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한다는 구상을 뜻했다.

1973년 쿠데타로 집권한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사독재 정권 아래에서 이 말의 용법이 달라졌다. 시카고대에서 공부한 경제 관료들인 "시카고 보이즈"가 설계한 개혁에 따라 1975년 이후 대규모 국영기업 민영화와 규제 완화, 무역장벽 축소가 진행됐다. 급격한 시장화에 반대하던 학자들은 이 정책과 추진자들을 신자유주의라고 지칭했다. 이 학자들은 독일 모델을 뜻하던 명칭을 칠레의 급진적 개혁을 비판하는 데 사용했다.

1980년대에는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가 민영화와 감세를 추진했고,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감세와 지출 삭감, 규제 완화를 경제정책으로 내세웠다. 이런 시장 중심 정책의 전개와 별개로, 신자유주의라는 명칭은 스페인어권의 비판적 연구에서 영어권 정치경제학으로 퍼졌다. 그 과정에서 민영화와 규제 완화 같은 개혁을 가리키는 용법에, 시장의 해법을 과도하게 신뢰한다는 비판적 함의가 함께 전해졌다.

1987년 백악관 집무실 밖 테라스에서 대화를 나누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 위키피디아

정치학자 테일러 보아스와 조던 간스-모스는 2009년 연구에서 개혁에 대한 평가에 따라 이 말의 사용 빈도가 다르다는 점을 확인했다. 두 연구자가 분석한 1990~2004년 학술 논문 148편에서는 시장 개혁을 비판하는 연구자들이 이 말을 자주 쓴 반면, 개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연구자들은 드물게 썼다. 중립적인 용례도 있었지만 스스로의 입장을 신자유주의라고 지칭하는 사례는 찾기 어려웠다.

1938년 파리에서 뤼스토는 국가가 경쟁을 감독해야 한다며 신자유주의를 새 운동의 명칭으로 제안했다. 1970년대 칠레의 시장화에 반대하던 학자들은 이 명칭으로 군사정권의 민영화와 규제 완화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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