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그림 이야기

상아와 흑단 버리고 기계의 피부로...대공황이 바꾼 아르데코

1925년 파리 수공예 장식으로 출발해 대공황 딛고 유선형 공산품으로...현대 디자인 바꾼 조형의 생명력

리지

아르데코3분

Illustration by Gemini

1925년 4월 프랑스 파리 센강변에서 국제박람회 하나가 열렸다. 프랑스 정부가 주최한 이 박람회에서 각국이 겨룬 것은 가구와 유리, 보석처럼 생활용품을 아름답게 꾸미는 미술 분야인 장식미술이었다. 나라별 전시관이 늘어선 박람회장에는 엄격한 규칙 하나가 내걸렸다. "어떤 역사적 양식의 모방도 허용하지 않는다." 과거 그리스 기둥이나 루이 왕정의 곡선을 베낀 작품은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그런데 정작 박람회장을 채운 것은 부유층 거실을 겨냥한 화려한 가구였다. 가구 장인 에밀 자크 륄만은 흑단과 상아를 깎아 세상에 단 하나뿐인 탁자와 의자를 빚어냈다. 기계를 거부하고 장인의 손끝으로 완성한 이 눈부신 장식 양식이 바로 훗날 전 세계를 휩쓴 아르데코의 첫 얼굴이었다.

아르데코라는 이름은 이 박람회에서 왔다. 정식 명칭인 현대 장식미술·산업미술 국제박람회(Exposition internationale des arts décoratifs et industriels modernes)를 줄인 말이다. 1920년대 프랑스 장식미술가와 가구 장인들이 옛 양식을 베끼는 대신 자기 시대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선보이겠다며 빚어낸 양식이었다. 곧은 직선과 계단처럼 층진 형태, 삼각형과 원처럼 반듯한 도형을 짜 맞춘 기하학적 무늬를 특징으로 삼았다.

당시 프랑스 장식미술가들에게 장식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었다. 디자이너 폴 폴로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불필요한 잉여야말로 필수불가결하다"고 맞섰다. "그렇지 않다면 음악과 꽃, 향수, 여인의 미소마저 금지해야 할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장식을 걷어낸 백색 콘크리트 전시관을 세우고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 못 박았다. 소수 부유층만을 위한 값비싼 수공예 장식은 새로운 시대의 적이라는 선언이었다.

두 진영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예상치 못한 파국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몇 해 뒤 미국 증시가 폭락하며 대공황이 세계를 덮쳤다. 상아와 흑단으로 짠 값비싼 장식품을 사줄 부유층 고객은 하룻밤 사이에 자취를 감췄다. 주문이 끊긴 수공예 공방들은 속속 문을 닫았다. 호화로운 장식의 시대는 그렇게 막을 내리는 듯했다.

하지만 아르데코는 그 추락의 자리에서 정반대의 길을 열었다. 거실에서 쫓겨난 장식은 공장의 기계와 손을 잡았다. 값비싼 상아 대신 크롬 도금과 스테인리스 스틸, 당시 새로 등장한 플라스틱인 베이클라이트를 둘렀다. 공기저항을 줄이려 고안된 유선형 곡선은 비행선과 기관차를 넘어 라디오와 진공청소기, 냉장고의 매끄러운 외피로 번져 나갔다. 사치품의 전유물이던 장식이 대량생산된 공산품의 얼굴로 내려앉은 것이다.

1925년 파리 현대장식미술 박람회 콩코르드 광장 입구. 위키피디아

장식의 변신은 도시의 밤하늘까지 흔들었다. 뉴욕 도심에 솟아오른 77층 크라이슬러 빌딩이 그 무대였다. 라디에이터 캡을 본뜬 거대한 독수리 조각과 날카로운 기하학적 아치를 강철로 둘러 올렸다. 무거운 석재 대신 반짝이는 금속 패널과 계단식 첨탑이 마천루의 정상을 장식했다. 장식을 죄악이라 부르던 순수주의자들의 예상과 달리 대중은 기계 문명의 속도감을 담아낸 이 차가운 금속 조형에 열광했다.

크라이슬러 빌딩 꼭대기. 계단식으로 겹친 부채꼴 아치와 스테인리스 스틸 첨탑이 마천루 정상을 덮었다. 크라이슬러 빌딩, 윌리엄 밴 앨런 설계, 1930년 준공. 새뮤얼 갓초 1932년 촬영,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 위키미디어 공용(PD-Gottscho)

파리 박람회에 모였던 장인들의 흑단 가구는 오늘날 미술관 유리장 안에 갇혀 있다. 하지만 "인간에게 불필요한 장식이 필수적"이라던 이들의 외침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 조형 감각은 스마트폰의 알루미늄 모서리와 날렵하게 뻗은 자동차의 보닛 라인 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쉰다. 아르데코는 가장 사치스러운 수공예로 태어나 대공황을 딛고 기계의 피부가 됐다. 차가운 산업 문명에 인간의 감각을 덧입히는 가장 매혹적인 조형 언어로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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