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아르데코, 삭막한 콘크리트에 장식 입혀...차가운 기술에 불어넣은 온기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뉴욕 마천루까지...산업 기술 뼈대에 장식의 온기를 더하다

1913년 프랑스 파리의 유서 깊은 거리인 몽테뉴가에 샹젤리제 극장이 문을 열었을 때 비평가들은 이 건물을 독일의 거대 비행선에 빗대 "몽테뉴가의 체펠린 비행선"이라고 불렀다. 주변의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 사이에 회색 철근 콘크리트로 각지게 올린 외벽이 거대한 군용 비행선처럼 낯설고 투박했기 때문이다. 공장이나 지하 차고에 쓰이던 산업 자재가 파리 도심의 예술 극장으로 들어선 첫걸음이었다.
프랑스 건축가 오귀스트 페레는 회색 콘크리트 뼈대를 감추지 않은 채 얇은 대리석 판을 덧대고 조각가 앙투안 부르델의 정교한 부조를 벽면에 새겼다. 당시 페레의 사무소에서 일하던 청년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도 이 현장에서 콘크리트를 다루는 법을 배웠다. 반듯한 형태와 기하학적 장식이 어우러진 이 극장은 훗날 아르데코라 불릴 건축의 출발점이 됐다. 아르데코는 차가운 산업 신소재의 뼈대 위에 장인의 정교한 장식을 결합한 예술 양식이다.

대서양을 건넌 아르데코는 미국의 마천루에서 화려하게 만개하며 도시의 얼굴을 바꿨다. 미국 건축가 윌리엄 반 알렌은 뉴욕 크라이슬러 빌딩 꼭대기에 자동차 라디에이터 캡을 본뜬 은빛 스테인리스 스틸 첨탑을 높게 올렸다. 디트로이트의 가디언 빌딩은 색채 세라믹과 광택 강철로 실내를 채워 "상업의 대성당"이라 불렸다. 건축가들은 산업이 뿜어내는 철과 유리를 거부하지 않고 화려한 기하학 문양을 결합해 도시의 기념비로 탈바꿈시켰다.

장식의 가치를 두고 건축계는 둘로 갈라졌다. 페레의 사무소를 떠나 모더니즘을 이끈 르코르뷔지에는 장식이 없는 기능적 상자를 대량 생산해야 한다며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 선언했다. 반면 프랑스 실내 디자이너 폴 폴로는 "인간은 필수적인 것만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않으며 과잉이 늘 필요하다"고 맞섰다. 꽃과 향수처럼 장식이야말로 인간의 삶을 기계와 구별해 주는 본질이라는 주장이었다.
대공황이 닥치며 두 진영의 승패가 판가름 났다. 호화로운 자재와 숙련 장인의 인건비를 감당할 자본이 사라지자 빌딩을 짓는 회사들은 장식을 가장 먼저 걷어냈다. 전 세계의 건축 학교들은 르코르뷔지에의 기능주의를 미래의 표준으로 채택했고 이후 도시의 풍경은 장식을 덜어낸 단조로운 유리 상자로 채워졌다. 공예와 산업 기술을 하나로 묶으려던 아르데코의 시도는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다.
사람들은 밋밋한 기계 상자에 쉽게 싫증을 느꼈다. 최근 뉴욕 브루클린에 들어선 브루클린 타워는 흑색 유리와 청동 기둥을 다시 두르고 도심의 시선을 모은다. 100년 전 파리 사람들이 낯설어하며 "몽테뉴가의 체펠린 비행선"이라 조롱했던 샹젤리제 극장은 차가운 공장의 재료로도 얼마든지 인간의 품격을 빚어낼 수 있다는 첫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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