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현실을 지우고 미래를 훔쳐 그린 화폭...사회주의 사실주의의 강요된 낙관
1934년 소련 작가대회가 선포한 유일 독트린...스탈린의 영혼 기술자들이 빚어낸 도상학의 유산

미술관 벽에 걸린 사회주의 회화 앞에서 우리는 위화감을 느낀다. 캔버스 속 햇살은 그늘 한 점 없이 쏟아지고, 탄탄한 근육의 노동자는 맑은 미소를 지으며 풍요로운 수확과 거대한 기계를 마주한다. 화면 속 풍경은 완벽해 보인다. 하지만 사실주의를 내걸고도 현실을 비추지 않는 이 조형은 어디서 왔을까.
1934년 모스크바에서 선포된 사회주의 사실주의는 스탈린과 공산당이 인민을 교화하고 체제를 선전하려 만든 소련의 공식 예술 사조였다. 당시 지도자 스탈린은 예술가를 "인간 영혼의 기술자"라 규정했다. 예술이 인민을 교화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명령이었다. 정밀한 붓질은 눈앞의 현실을 기록하는 일과 거리가 멀었다.
당의 공식 강령은 "현실을 그 혁명적 발전 속에서 묘사한다"였다. 이 강령은 화가들에게 서슬 퍼런 족쇄였다. 굶주린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면 "자연주의"로 몰렸고,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면 "형식주의"라는 낙인이 찍혔다. 결국 화폭에는 미래의 유토피아가 이미 완성된 것처럼 그리는 강요된 낙관만 남았다.
엄격한 규범 아래 화면은 승리와 건강함으로 채워졌다. 혁명화가협회 시절부터 다져진 영웅적 구도에는 그늘이 머물 자리가 없었다. 계몽인민위원 루나차르스키의 신체 미학에 맞춰 노동자는 결점 없는 거인이 되었다. 노동자 뒤로 만개한 꽃밭과 공장 굴뚝이 화폭을 받쳤다.

화가 이사크 브로드스키의 작품은 이 규범의 정점을 드러낸다. 그가 그린 스탈린 초상에서 지도자는 단호한 눈빛과 군복 차림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인간적인 피로나 고뇌의 흔적은 매끄러운 붓질 아래 완전히 지워졌다. 묘사는 정밀했고 색채는 엄숙했다. 결점 없는 권력을 캔버스에 세운 기념비였다.

그의 다른 그림인 "스몰니의 레닌" 역시 마찬가지다. 혁명 본부였던 스몰니 학당에서 서류를 보는 레닌의 모습은 소박한 일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얀 천을 씌운 안락의자와 책상은 지도자의 헌신을 전달하려 치밀하게 연출된 무대였다. 치밀한 무대 장치 속에서 일상조차 국가가 허락한 서사 안에서만 그려졌다.
현실을 지우고 미래를 앞당겨 그린 화폭은 모순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소련이 해체되자 유토피아의 사실주의는 환멸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런데 이 사실주의가 남긴 것은 낡은 선전물뿐일까. 체제가 무너졌어도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던 조형 공식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오늘날 우리는 사회주의 사실주의가 벼려낸 시각 언어의 변주 속에서 살아간다. 피트니스 센터 간판의 탄탄한 신체, 신제품 광고의 환한 미소, 선거 포스터의 결연한 눈빛 속에는 그 시절 화폭을 메웠던 도상학이 고스란히 숨어 있다. 완벽한 순간을 사실로 꾸며내려는 욕망이 존재하는 한, 눈부신 낙관의 환상은 끊임없이 우리 곁으로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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