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그림 이야기

벽지라 조롱받던 납작한 캔버스, 모더니즘의 시각 혁명

3차원 환영 벗고 평면 본질 파고들어...입체주의 거쳐 현대 디자인 표준으로 남아

리지

모더니즘 회화3분

Illustration by Gemini

1863년 5월 프랑스 파리 산업궁에서 공식 살롱 낙선전이 열렸다. 이때 화가 에두아르 마네가 유화 한 점을 내걸었다. 살롱전 심사에서 떨어진 이 그림은 <풀밭 위의 점심>이었다. 마네는 숲속에 정장 차림 남성들과, 옷을 벗은 여성을 함께 배치했다. 이 파격적인 그림을 보려고 전시장에 관객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하지만 몰려든 관객은 찬사 대신 조롱을 쏟아냈다. 조롱의 표적이 된 캔버스 속 인물들은 그림자가 거의 없어 벽지처럼 평평했다. 게다가 원근법도 무시한 채 뒤편 여인을 엉뚱하게 크게 그렸다. 이 화면을 마주한 관객들은 배를 잡고 웃어댔다. 분노한 관객들은 지팡이로 캔버스를 찢으려 달려들었다. 전시장 곳곳에서 원근법도 모르는 초보자의 미완성 낙서라는 야유가 쏟아졌다. 서양 미술의 상식을 뒤흔든 모더니즘의 첫 파도는 그렇게 조롱 속에서 시작됐다.

에두아르 마네가 평면적 명암과 정면 응시로 파리 살롱전에서 거센 비난을 산 대표작 <올랭피아>. 위키피디아

500년 동안 서양 미술의 상식은 캔버스를 투명한 창문처럼 꾸미는 데 있었다. 당시 화가들은 원근법과 명암으로 3차원의 환영을 감쪽같이 빚어냈다. 이렇게 실제 공간처럼 깊이감을 더할수록 거장으로 인정받았다. 물속 물고기가 물을 의식하지 못하듯, 오랜 상식은 캔버스의 본래 모습을 가렸다. 그래서 화가들은 붓질을 숨겼다. 이들은 캔버스의 평면성을 지우는 데 매달렸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사진기가 등장하면서 이 견고한 성채가 흔들렸다. 렌즈를 단 기계가 등장하자 사물을 있는 그대로 베끼는 일에서 기계의 정밀함을 이길 화가는 없었다. 결국 현실을 닮게 그리는 재현의 기술은 힘을 잃었다.

모더니즘 회화는 3차원의 환영을 걷어내고 캔버스 본래의 평면성을 드러내는 시각 예술이다. 상식을 의심한 이 자리에서 새로운 시각 언어가 싹텄다.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지적했듯, 모더니즘은 회화가 제 본질을 찾아 나선 여정이었다. 이 여정 속에서 그림이 문학의 이야기나 조각의 입체감을 흉내 낼 이유는 없어졌다. 회화의 고유한 속성은 오직 물감을 칠한 평평한 캔버스에 있었다. 이에 따라 화가 폴 세잔은 풍경을 원기둥과 구의 면으로 해체했다. 화가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는 세잔의 평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두 화가는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쪼개 평면 위에 파편으로 다시 맞춘 입체주의를 선보였다.

파블로 피카소가 사물을 여러 시점으로 해체해 평면 위에 단순한 면으로 재구성한 <다니엘헨리 칸바일러의 초상>. 위키피디아

입체주의가 공간을 부수자 덜어내기는 더욱 빨라졌다. 네덜란드 화가 피트 몬드리안은 사물의 겉모습을 깨끗이 지웠다. 몬드리안은 빨강, 파랑, 노랑의 원색과 검은 격자선만 캔버스에 배치했다. 러시아 화가 카지미르 말레비치는 흰 캔버스 위에 검은 사각형을 얹었다. 이는 눈에 보이는 세상과의 끈을 끊어버린 순수 추상화였다. 화가 잭슨 폴록은 이젤마저 치웠다. 폴록은 바닥에 캔버스를 깔고 페인트를 뿌렸다. 이 거침없는 붓질은 물감이 캔버스 표면에 부딪힌 물리적 흔적 그 자체를 남겼다. 서양 미술이 500년 동안 쌓은 3차원의 장식을 100년에 걸쳐 벗겨낸 과정이었다.

깊이를 버리고 평면과 선만 남긴 덜어내기는 화실 안의 소동으로 끝나지 않았다. 모더니즘의 시각 문법은 오늘날 현대인의 일상을 온통 둘러싸고 있다. 스마트폰의 납작한 네모꼴 앱 아이콘이 단적인 예다. 그림자와 입체감을 털어낸 플랫 디자인은 디지털 화면의 표준이 되었다. 직선과 원으로 정돈한 지하철 노선도 역시 같은 길을 걸었다. 군더더기를 깎아낸 기업 로고와 포장지에도 이 평면이 살아 있다.

1913년 뉴욕 아모리 쇼에서 관객들은 화가 뒤샹의 그림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당시 언론은 가죽 공장이 폭발한 잔해 같다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조롱 속에서도 한 달 동안 10만 명의 관객이 전시장을 찾았다. 캔버스가 평면이라는 인정에서 출발한 모더니즘은 1959년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 완공에 이르기까지 반세기에 걸쳐 도시와 일상의 시각 언어를 새로 짰다.

이 글이 어땠나요?

눌러 주시면 다음 글을 쓸 때 소중한 참고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