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버튼만 누르면 끝나는 시대...기계의 선명함 지워 예술 증명한 회화주의
1888년 코닥 카메라 등장에 맞서...초점을 흐리고 붓질을 더해 회화 반열로 끌어올려

1888년 여름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상자 하나가 세상에 나왔다. 발명가 조지 이스트먼이 선보인 최초의 보급형 카메라였다. 이름은 코닥이었다. 네모난 나무 상자 안에는 필름이 미리 장전돼 있었다. 사진 100장을 연속해서 찍을 수 있었다. 사용법도 단순했다. 초점을 맞출 필요가 없었다. 버튼을 누르고 태엽을 감는 동작만으로 충분했다. 신문 지면에는 광고 문구가 넘쳐났다. "당신은 버튼만 누르세요, 나머지는 우리가 합니다"라고 적혔다. 그 약속대로였다. 고객이 상자를 공장에 보내면 인화를 마친 사진과 새 필름을 채운 카메라가 돌아왔다. 무거운 삼각대와 독한 약품에 묶여 있던 사진 기술이 비로소 풀려났다. 해방된 기술은 대중의 손끝으로 빠르게 퍼졌다.
손쉬운 카메라의 보급은 사진을 예술로 세우려던 이들에게 거대한 위기였다. 어두운 현상실을 지키던 전문 사진가들의 입지가 좁아졌다. 거리에는 셔터만 아무렇게나 누른 수백만 장의 사진이 넘쳐났다. 사냥터의 빗맞은 총격에 빗댄 "스냅숏"이라는 말이 일상어가 됐다. 기계가 알아서 또렷한 상을 맺어 주었다. 그러나 상이 또렷해질수록 사진은 예술에서 더 멀어졌다. 손가락 하나로 누구나 똑같은 사실을 건져 냈다. 기계적 복제물이었다. 창작자의 영혼이 깃들 곳은 없다는 비판이 일었다. 미술 평론가 윌리엄 하우 다운스는 "예술은 공정의 차원을 넘어 인간의 기질과 정서에서 태어난다"라고 짚었다. 사진이 예술의 전당에 들려면 기계의 차가운 눈동자를 지워내야 했다.

사진가들이 택한 돌파구는 기계의 가장 큰 미덕인 또렷함을 거스르는 길이었다. 카메라 렌즈의 초점을 일부러 흐리게 맞췄다. 렌즈 표면에 기름을 발랐다. 노출 도중 삼각대를 툭 쳐서 윤곽선을 부드럽게 번지게 했다. 어두운 현상실은 화가의 화실처럼 탈바꿈했다. 고무액에 중크롬산칼륨과 물감 안료를 섞어 바르는 기법이 중심에 섰다. 바로 "검 바이크로메이트" 공정이다. 작업자들은 굳어가는 화학 피막을 붓과 주걱으로 문지르고 벗겨냈다. 인화물 위에 목탄 데생이나 수채화처럼 섬세한 결이 일어났다. 사람의 손길로 직접 빚어낸 고유한 작품이었다. 이것이 회화주의였다. 기계의 사실 기록을 넘어 작가의 감정과 주관적 해석을 전달하려 했다.

회화주의 운동의 중심에 선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는 사진에 감도는 공기감을 강조했다. 윤곽을 누그러뜨리는 분위기야말로 사실을 예술로 바꾸는 열쇠라고 믿었다. 동료 에드워드 스타이컨이 1904년 완성한 <플랫아이언>은 그 결실이었다. 스타이컨은 비 내린 황혼의 뉴욕 마천루를 세 번 겹쳐 인화했다. 손으로 푸른 안료를 입혔다. 물웅덩이에 번지는 마차 불빛은 제임스 휘슬러의 야상곡을 닮아 있었다. 마침내 승리를 거뒀다. 1910년 미국 뉴욕주 버펄로의 올브라이트 아트 갤러리가 사진 15점을 매입했다. 공공 미술관이 사진을 순수 예술 소장품으로 공인한 역사상 첫 사건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승리의 자리에서 판이 뒤집혔다. 승리를 이끈 스티글리츠가 결별을 선언했다. 그는 "사진이 회화를 흉내 내는 억지 부림의 명치에 일격을 가해야 한다"라고 외쳤다. 손으로 다듬은 안개는 순식간에 구시대의 유물로 물러났다. 판이 바뀌었다. 카메라 본연의 기계적 또렷함을 긍정하는 "스트레이트 포토그래피"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하지만 기계의 날 선 차가움을 지우려던 감각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늘날 스마트폰 카메라는 1888년의 초기 카메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밀하다. 인공지능 센서는 어둠 속에서도 털 한 올까지 또렷하게 짚어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다시 렌즈의 또렷함을 밀어낸다. 인물 모드를 눌러 배경을 부드럽게 흐린다. 빈티지 필터를 얹는다. 거친 필름 입자와 바랜 색감을 덧입힌다. 버튼만 누르면 기계가 완벽을 보장하는 시대다. 사람들은 여전히 기계의 또렷함을 덜어낸다. 그 빈자리에 자신만의 감정을 새겨 넣는다. 버펄로 올브라이트 녹스 미술관은 1910년 구입한 15점의 사진 원본을 116년이 지난 지금도 수장고에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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