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마샬이 뻗었다" 농담 한마디...유고 체제 뒤흔든 신원시주의
서구 팝 대신 거리의 자조 택해...공산당 전당대회 흉내 내며 자진 해산

1980년대 초 유고슬라비아 남부 도시 사라예보의 청년들은 화려한 서구 팝과 사회주의의 경직된 권위주의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택했다. 서구의 반짝이는 뉴 로맨틱 음악을 흉내 내는 대신 고향 사라예보의 가장 낙후된 골목과 거친 노동자들의 삶을 그대로 무대로 끌어올렸다. 이들은 스스로를 미개한 시골뜨기라 부르며 신원시주의(New Primitivism)라는 깃발을 내걸었다. 신원시주의는 세련된 주류 대중문화에 맞서 사라예보 변방의 거친 거리 문화와 자조적 풍자를 앞세운 예술 운동이었다. 청년들은 영웅 서사를 조롱하고 서민의 일상을 노래하며 기성세대의 위선에 유쾌한 균열을 냈다.
신원시주의의 중심에는 고등학교 동창들이 결성한 사라예보의 펑크 록 밴드 자브라네노 푸셰네가 자리 잡았다. 1984년 봄 발표한 데뷔 음반 <이것이 발터다>는 음반사가 흥행을 기대하지 않아 고작 3,000장만 제작됐다. 하지만 교도소 재소자의 푸념을 담은 노래와 주간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의 풍자가 어우러지자 뜻밖의 돌풍이 일었다. 음반은 10만 장 넘게 팔려 나갔고, 청년들은 수도 베오그라드의 대형 체육관을 가득 메운 관객 앞에서 거친 사라예보 은어를 쏟아냈다.

거침없는 풍자로 파죽지세를 달리던 자브라네노 푸셰네는 뜻밖의 사소한 자리에서 거대한 암초를 만났다. 그해 11월 27일 아드리아해 연안 도시 리예카의 한 체육관 무대에서 음향기기가 갑자기 고장 났다. 밴드의 간판 보컬 네레 카라일리치는 마이크를 잡고 "마샬이 뻗었다"고 농담을 던진 뒤 "앰프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영국의 음향기기 상표인 마샬과 4년 전 세상을 떠난 종신 대통령 요시프 브로즈 티토 원수의 칭호를 빗댄 즉흥적인 농담이었다. 공연 지연을 해명하려던 이 실없는 한마디는 무대 아래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튿날 아침부터 관영 신문들은 청년 밴드를 향해 일제히 맹공을 퍼부었다. 신문들은 체제의 존엄과 해방 전쟁의 숭고한 기억을 훼손했다며 "신원시주의자들의 불길한 연기"라 비판했다. 공산주의 청년동맹 내부의 파벌들은 권력 투쟁의 무기로 스물한 살 청년의 말실수를 끌어들였다. 예정된 순회공연이 줄줄이 취소됐고 방송에서는 이들의 음악이 끊겼다.

그렇다면 낡은 음향기기에 던진 농담 한마디가 정말로 국가의 존립을 위협했을까. 청년들은 굳어버린 성역의 껍데기를 향해 변방 특유의 자조와 넉살을 마주 세웠다. 엄숙한 국가주의는 작은 웃음조차 포용하지 못할 만큼 허약했고, 무대에서 고장 난 고철 음향기기보다 더 빠르게 부식해 갔다. 이념의 신전에 바쳐진 거창한 구호 뒤편에서 평범한 시민들의 실제 삶은 점점 더 곤궁으로 내몰렸다.
신원시주의는 탄압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자신들만의 유쾌한 방식으로 퇴장을 택했다. 1987년 청년들은 사라예보 연극예술아카데미에서 공산당 전당대회를 흉내 낸 가짜 해체 대회를 열었다. 단상에 오른 이들은 스스로 깃발을 내리며 "남의 손에 해체당하느니 우리 손으로 닫는다"고 선언했다. 냉소적 풍자로 무장했던 이들의 실험은 훗날 연방 해체의 파국을 예견하는 날카로운 거울이 됐다.
신원시주의가 남긴 유산은 오늘날 동유럽 록 음악과 독립 예술의 밑바탕에 여전히 흐른다. 거대 권력의 훈계를 조롱하는 인터넷 밈과 허를 찌르는 거리 예술의 문법은 모두 사라예보 청년들의 넉살에 빚을 졌다. 성역은 무너졌지만 그 자리에서 피어난 골목의 웃음은 시대를 넘어 사람들의 입으로 이어졌다. 1984년 11월 27일 리예카 체육관 무대에서 고장 난 음향기기 한 대는 유고슬라비아 현대사의 거대한 분기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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