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바닥에 직접 부은 물감 한 캔...붓자국 지워낸 색면회화
붓 던진 헬렌 프랑켄탈러의 얼룩...캔버스 속으로 스며든 거대한 색채

1952년 10월 스물네 살 미국 화가 헬렌 프랑켄탈러는 뉴욕 작업실 바닥에 캔버스를 펼쳤다. 밑칠하지 않은 거친 면 천이었다. 그는 커피 캔에 유채 물감과 테레빈유를 묽게 갠 뒤 캔버스에 그대로 부었다. 물감은 표면에 층을 쌓지 않았다. 대신 면 섬유의 올 사이로 번지며 직물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 실험으로 시작된 색면회화는 화면 전체에 넓은 색채를 배치해 색채 자체를 회화의 주인공으로 세운 현대 추상미술의 독창적인 양식이다. 당시 바닥에 물감을 부어 완성한 첫 그림이 대표작 <산과 바다>다.
이듬해 봄 워싱턴 화가 모리스 루이스와 케네스 놀랜드가 뉴욕 작업실을 찾았다. 두 사람은 프랑켄탈러의 작업실 바닥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거대한 캔버스에 물감이 얼룩처럼 스며든 광경을 바라보며 회화의 새로운 길을 확인했다. 실제로 루이스는 훗날 이 만남을 두고 "가능성을 향해 놓인 다리"라고 기록했다. 이후 워싱턴으로 돌아간 두 화가는 캔버스를 기울였다. 물감을 흘려보내는 작업에 몰두했다.

이들의 시도는 당대 미국 화단을 지배하던 추상표현주의의 문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도전이었다. 당시 잭슨 폴록과 빌럼 데 쿠닝 같은 화가들은 격렬한 신체 동작과 거친 붓질로 캔버스에 내면의 고통을 쏟아냈고, 두껍게 쌓아 올린 물감 덩어리는 화가의 자아와 극적인 몸짓을 드러내는 무대였다. 반면 색면회화는 달랐다. 화가의 손자국과 과장된 서사를 지우고 색채 본연의 넓은 면적만 남겼다.
화풍의 변화 뒤편에는 물감의 화학적 진화가 맞물려 있었다. 기존 유채 물감은 기름 성분 때문에 밑칠 없는 캔버스에 스며들면 둘레에 누런 기름 얼룩을 남겼다. 하지만 이 무렵 개발된 아크릴 합성수지 물감은 달랐다. 건조가 빠르고 색채가 한층 선명했다. 실제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큐레이터 헨리 겔트잘러의 기록처럼 아크릴 물감은 번짐의 경계선에서 말끔하게 멈췄다.
색면을 탐구한 화가들은 저마다 고유한 방식으로 화면의 깊이를 더해 갔다. 가령 화가 바넷 뉴먼은 거대한 단색 화면에 "지프(zip)"라 부른 얇은 수직선을 그어 공간을 나누었다. 화가 마크 로스코는 경계가 흐릿한 직사각형 색채 덩어리로 인간의 근원적인 비극과 환희를 화면 가득 담아냈고, 자신의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이 느낀 종교적 감정을 온전히 공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며 색면회화는 한층 절제된 기하 형태로 진화했다. 화가 프랭크 스텔라는 일정한 간격의 줄무늬를 반복했다. 캔버스의 평면성을 끝까지 밀어붙인 시도였다. 화가 리처드 디벤콘은 태평양 해안의 빛을 담았다. 디벤콘은 <오션 파크> 연작을 오랜 세월 꾸준히 그렸다. 붓의 궤적을 지운 평평한 화면은 대상을 모방하지 않고도 빛과 공간의 감각을 생생하게 전했다.
색면회화가 일군 조형 언어는 현대 시각 문화의 기본 문법으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스마트폰 화면의 평면 디자인과 건물의 단색 외벽은 색채 자체의 공간감에 깊이 빚을 졌으며, 영국 기후학자 에드 호킨스가 지구 기온 상승을 나타낸 "온난화 줄무늬"도 색면회화의 구성을 빌렸다. 프랑켄탈러가 뉴욕 작업실 바닥에서 물감을 부어 완성한 <산과 바다>는 지금도 워싱턴 국립미술관 상설 전시실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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