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세상의 흐름

기부 늘리지 못한 세액공제, 바뀐 건 "세금의 주소"뿐

미국서 공제 영수증 1900만 장 줄어든 해에도 기부 총액은 그대로...세금은 기부를 늘리지 못해

리지

고향사랑기부제2분

올해 1월 1일부터 주소지 밖 지방자치단체에 내는 고향사랑기부금 세액공제 제도가 개편됐다. 새 기준에 따라 10만원까지는 전액을, 10만원 초과 20만원 이하 구간은 44%를 공제해 준다. 여기에 기부금을 받은 지방자치단체는 행정안전부 지침에 따라 기부금의 30% 범위에서 답례품까지 준다. 주소지 밖 지자체에 20만원을 낸 납세자는 연말정산에서 14만4000원을 공제받고, 6만원 상당의 지역 특산품도 받는다. 세액공제액과 특산품을 합친 혜택은 20만4000원으로 본래 낸 기부금보다 4000원 많다.

고향사랑기부제는 2023년 1월 시행된 제도로 주소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하면 세액공제와 답례품 혜택을 함께 준다. 행정안전부가 지방 재정을 돕고 활력을 살리려는 취지로 도입했고, 답례품 지급 지침과 모금액 집계도 행정안전부가 총괄하고 있다.

납세자가 손에 쥔 영수증을 진정한 기부의 증거로 보기는 어렵다. 납세자는 세금이 쓰일 곳을 지정했을 뿐이다. 원래 국세로 거둬 중앙정부 국고에 들어갔을 기부금 20만원의 사용처를 납세자가 직접 지정하고, 그 대가로 4000원을 덤으로 얹어 받았다. 결국 비용은 국가가 부담했다.

세금으로 기부를 떠받치는 정책의 역사는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의회는 1917년 전시소득세법을 제정하며 기부금 소득공제 조항을 신설했다. 1차 세계대전 전비를 마련하기 위해 소득세 최고세율을 67%까지 인상하던 당시, 세금 부담이 커지면 부유층이 가장 먼저 기부를 중단할 것이라는 우려 탓에 마련한 조항이었다. 다만 기부금 공제 한도는 소득의 15%까지였다.

기부 위축 우려가 적중했는지는 100년이 지난 뒤에야 확인됐다. 미국 정부가 2017년 세법 개정으로 표준공제를 대폭 인상하자 납세자가 항목별 공제를 일일이 신청할 실익이 사라졌다. 기부금 공제를 신청한 개인 소득세 신고서는 2017년 3400만 건에서 이듬해 1500만 건으로 절반 넘게 줄었다. 불과 1년 만에 1900만 장의 공제 신고서가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민간 기부는 흔들리지 않았다. 2025년 물가 기준으로 환산한 미국 개인 기부 총액은 2017년 3780억 달러에서 이듬해 3760억 달러로 줄어 감소 폭이 1%에도 미치지 않았다. 반면 소득세 신고서에 반영된 기부금은 같은 기준으로 3370억 달러에서 2530억 달러로 4분의 1(24.9%) 가까이 감소했다. 실제로는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한 영수증만 줄어든 것에 불과했다. 정부는 시민들이 원래 하던 기부에 세금으로 비용을 보탠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은 지금 미국과 정반대 방향으로 같은 실험을 하고 있다. 2023년 1월 도입된 고향사랑기부제의 모금액은 첫해 650억원에서 이듬해 870억원, 지난해 1515억원으로 급증했다. 3년 만에 모금 규모가 두 배를 넘어섰으니 외형상 성공한 제도로 평가받을 법하다. 그러나 기부금이 걷히는 시기를 살펴보면 제도의 허실이 뚜렷이 확인된다. 행정안전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모금액은 349억원으로 연간 모금액 1515억원의 4분의 1(23.0%)에 그쳤다. 전체 기부금의 대부분은 하반기, 그중에서도 연말정산을 앞둔 12월 몇 주 사이에 집중적으로 몰렸다. 고향을 돕겠다는 자발적 마음이 유독 12월에만 생겨났을 리는 없다.

12월의 어느 날 20만원을 기부하고 특산품 상자를 받은 납세자는 기부금 영수증 한 장을 손에 쥔다. 영수증에는 낸 기부금 20만원만 찍혀 있을 뿐, 연말정산에서 공제받을 14만4000원도, 상자 속 6만원 상당의 특산품도 나와 있지 않다. 이 영수증 한 장 덕분에 납세자는 스스로를 어엿한 기부자라고 부를 수 있다. 1917년 미국 정부 역시 결국 기부금 영수증 한 장을 사려 했다. 다만 그때는 소득의 15% 한도 안에서 적용 세율에 해당하는 비용만 국가가 부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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