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세상의 흐름

아파트 대신 지분을 쌓는다...스마트폰으로 사 모으는 새 벽돌

美 주식 자산이 집값보다 24조달러 앞선 시대...분할 가능한 글로벌 자본으로 옮겨앉는 가계 대차대조표

리지

가계 자산의 주식 이동6분

Illustration by Gemini

도심 아파트 재개발 공사장의 타워크레인 아래 쌓인 붉은 벽돌더미를 등지고 지하철 승강장에 선 청년은 스마트폰 화면을 켠다. 화면 속 해외 주식 주문 창에서는 미국 대표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가 0.1주 단위로 체결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중산층의 자산 형성을 상징하던 주택 대신 손안의 화면 속 분할된 지분이 새로운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경제 주체 간에 돈이 오간 흐름을 집계하는 국가 통계인 자금순환에서 가계 자산의 중심축이 주식으로 이동한 흐름이 확인됐다. 미국 가계가 보유한 주식 자산이 74조달러로 주거용 부동산을 24조달러 이상 앞지르고 있다. 한국 가계도 한 분기 만에 100조원이 넘는 돈을 주식과 펀드로 투입하며 예금을 39조원 줄였다. 오랜 세월 가계의 자산을 지탱하던 실물 부동산의 시대가 저물고 주식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국과 전후 한국을 지탱한 중산층 형성의 공식은 단순했다. 도심 외곽이나 신도시에 지은 내 집을 마련하고 30년에 걸친 장기 주택담보대출을 매달 성실하게 갚아나가는 경로였다. 주택은 단순한 거처를 넘어 매달 원리금을 강제로 저축하게 만드는 수단이었다. 도시화와 인구 증가에 힘입어 자산 가치가 상승하는 가장 확실한 차입 투자 수단이기도 했다.

정부의 금융 정책과 조세 제도 역시 모기지 이자 소득공제와 공공 보증을 통해 국민을 주택 소유자로 만드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설계됐다. 집을 소유한 사람만이 계층 상승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은 지난 세기 자본주의가 평범한 노동자에게 제시한 가장 확고한 제도적 약속이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최근 10여 년 사이 근본적인 균열을 냈다. 대도시의 주택 가격은 가계의 연간 가처분소득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고금리와 강화된 대출 규제는 평범한 노동자의 진입 통로를 차단했다. 주택은 최소 수억 원의 종잣돈과 감당하기 힘든 부채를 한 번에 짊어져야만 매수할 수 있는 거대한 덩어리가 됐다.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한국 가계의 평균 자산 5억6,678만원 가운데 실물자산 비중은 여전히 75%를 웃돈다. 반면 청년층 하위 20%의 순자산은 844만원에 머물러 상위 20%와의 자산 격차가 78배로 벌어졌다. 소득을 저축해 아파트 한 채를 통째로 매수할 수 있는 기회는 부모의 자산을 물려받은 소수로 좁혀졌다.

진입 장벽이 높아진 부동산 시장의 반대편에서 자본시장은 정반대의 진화를 거듭했다. 자금순환표는 자산과 돈의 흐름을 기록하는 국가 통계표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2026년 2분기 자금순환표를 발표했다. 미국 가계와 비영리단체가 보유한 직접·간접 주식 자산은 74조달러에 달했다. 2분기 미국 가계의 거주용 주택 자산 총액은 49조8,000억달러였다. 주식 자산이 주택보다 24조2,000억달러 더 많았다.

2000년대 중반 주택 거품기까지만 해도 가계 자산의 1위는 주거용 부동산이었다. 이제 자본시장의 주식에 완전히 주도권을 내어주었다. 글로벌 기술 대기업들의 강력한 현금 창출력과 미국 자본시장의 확장이 맞물렸다. 가계의 순자산을 불리는 핵심 동력이 부동산에서 증시로 바뀌었다.

이 거대한 자금 이동을 뒷받침한 동력은 기술의 진보와 제도의 정비였다. 존 보글이 1975년 뱅가드를 설립하며 인덱스 펀드를 개척했다. 500개 우량 기업의 성장을 최저 수준의 수수료로 담아내는 패시브 투자의 시대가 열렸다. 주식 거래 수수료의 무료화와 소수점 단위 분할 매수 기술이 결합했다. 주식 투자의 문턱은 1달러 수준으로 낮아졌다.

수억 원의 대출을 일으켜 견본주택 앞에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 스마트폰 증권 앱에서 매달 1만원씩 세계 최고 기업들의 지분을 사 모을 수 있게 됐다. 401(k)와 같은 퇴직연금 자동 적립 제도는 월급날마다 노동자의 소득을 글로벌 우량 주식으로 공급하는 거대한 자동 투자 체계로 자리 잡았다.

부동산 선호가 유독 강했던 한국에서도 동일한 구조적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 지분증권은 주식처럼 기업 지분을 나타내는 증권이다. 한국은행은 2026년 2분기 자금순환 잠정 통계를 발표했다.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지분증권과 투자펀드 운용 규모는 101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운용액은 가계가 금융상품을 사들이며 새로 투입한 순자금이다. 지분증권 운용액은 1분기의 61조4,000억원에서 한 분기 만에 40조원 넘게 불어나며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은행 예금 취급기관의 가계 저축성 예금은 39조원 줄어들었다. 반면 주식 매수를 위해 증권사에 맡긴 자금은 20조원 늘어났다. 예금 감소분의 51%에 이르는 규모다. 수십 년간 안전자산의 대명사였던 은행 정기예금과 아파트 청약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왔다. 이 자금이 자본시장의 주식과 상장지수펀드로 유입됐다.

이러한 흐름은 자본시장의 제도 개선과 결합하며 속도를 더하고 있다. 2024년 10월 말 도입된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는 가입자가 보유 상품을 해지하지 않고도 금융사를 바꿀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제도 시행 20개월 만에 누적 이전액은 15조8,699억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은행에서 증권사로 이동한 자금만 5조2,225억원으로 전체의 33%를 차지했다.

확정기여형(DC)은 근로자가 적립금을 직접 운용하고 개인형퇴직연금(IRP)은 개인이 퇴직금을 모아 스스로 관리한다. 이 두 연금의 자금이 원리금 보장형 예금에서 벗어나 글로벌 주식형 상장지수펀드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이 집계한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관 잔액은 2,000억달러를 돌파했다. 최근 두 달간 미국 주식 순매수액만 70억3,900만달러에 달해 국내 유가증권시장 순매수 규모를 넘어섰다. 청년층에게 자산 증식의 기본 단위는 국내 아파트를 벗어나 미국 나스닥과 S&P 500의 주식으로 옮겨갔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제기되는 반론 역시 만만치 않다. 주식은 본질적으로 가격 변동성이 극심한 위험자산이다. 매일 시세가 등락하는 주식 계좌가 주거 안정이라는 실물 부동산의 방어력을 대신할 수 없다는 비판이다. 주식 시장의 수익은 대중 전체에 골고루 분배되기보다 자본을 대규모로 운용하는 최상위 부유층에 여전히 집중돼 있다.

미국에서도 상위 10%의 부유층이 전체 주식 자산의 80%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청년층 내부에서도 격차가 가파르게 벌어지고 있다. 부모로부터 종잣돈을 물려받아 대형 우량주를 선점한 이들과 소액으로 고위험 상품에 투자하는 이들의 간극이다. 주식 시장은 하루아침에 평가손실을 안길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의 안정적인 노후를 책임질 사회적 사다리가 되기에는 너무 취약하다는 지적은 타당한 현실 감각이다.

그럼에도 대중이 주식을 선택하는 까닭은 선택의 통로가 닫혀버렸기 때문이다. 아파트라는 실물 자산은 평생의 근로소득을 투입해도 매수할 수 없는 대상이 됐다. 이러한 사회에서 주식은 보통 사람이 글로벌 기업의 생산성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하게 열려 있는 통로다.

주택은 한 번 사면 이사를 가거나 매도하기 전까지 현금화할 수 없는 유동성의 제약을 동반한다. 반면 주식은 필요할 때마다 원하는 만큼 분할 매도할 수 있는 유동성을 제공한다. 비록 단기 변동성은 클지언정 세계 최고 기업들의 혁신과 배당에 기대어 장기 복리의 성장을 누릴 수 있다. 이는 근로소득의 한계에 부딪힌 가계가 물가 상승을 방어하는 실질적인 수단으로 기능한다. 집을 사지 못해 좌절하던 개인들이 글로벌 자본시장의 주식을 사 모으며 스스로 가계 자산을 재편하는 선택은 변화한 환경에 맞춘 합리적인 경제적 적응이다.

진짜 문제는 이 구조적 전환이 국가 경제 전체에 던지는 새로운 거시경제적 파장이다. 가계의 자산이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이동했다. 가계 소비를 좌우하는 자산 효과(wealth effect)의 진원지도 주택시장에서 증권시장으로 바뀌었다. 과거에는 집값이 오르면 집주인들이 지갑을 열고 집값이 떨어지면 내수가 얼어붙었다. 이제는 뉴욕 증시와 여의도 증시의 지수 등락이 중산층의 소비 심리를 실시간으로 흔든다.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이 대규모로 주식형 자산에 편입됐다. 금융위기나 증시 급락이 닥쳤을 때 가계가 입을 충격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직접적이고 광범위해졌다. 국가 경제의 완충재 역할을 하던 가계 재정이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에 노출되는 새로운 위험 국면에 들어섰다.

이 역사적인 자산 전환의 지속성은 향후 세 가지 지표를 통해 명확히 확인될 것이다. 첫째는 한국은행이 매 분기 발표하는 자금순환표다. 가계의 지분증권 및 투자펀드 운용 규모는 2026년 2분기에 101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이 흐름을 이어가며 전체 금융자산 내 비중을 구조적으로 끌어올리는지 여부다. 둘째는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DC형 퇴직연금의 타사 IRP 이전 전산화다. 이 작업이 완료된 뒤 은행권에서 증권사로 이동하는 퇴직연금 실물이전 규모와 주식형 ETF 편입 비율을 살펴야 한다.

셋째는 한국예탁결제원의 외화주식 보관 잔액이 환율 변동이나 일시적 증시 조정에도 불구하고 상승세를 지켜내는지다. 이 지표들이 견조하게 유지된다면 가계 자산의 중심축 이동은 되돌릴 수 없는 시대적 현실로 굳어질 것이다.

도심의 콘크리트 골조와 타워크레인은 여전히 거대한 아파트 단지를 올리고 있지만 그 아파트를 바라보는 청년들의 시선은 이전과 다르다. 대규모 부채를 감당하지 못한 세대는 더 이상 청약 통장 앞에서 좌절하지 않는다. 그들은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빅테크 기업의 주식을, 반도체 공급망을 지탱하는 제조사의 지분을 0.1주씩 매수한다.

수억 원의 부채를 짊어져야만 비로소 주어지던 주택 대신 매달 분할 매수하는 주식 지분이 그들의 새로운 자산이 됐다. 실물 주택은 아닐지라도 고물가와 저성장 속에서 자본주의 기업의 성과를 나누어 갖는 새로운 자산 기반을 손바닥 위에서 구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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