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세상의 흐름

40년 햄버거 저울이 끝내 맞추지 못한 환율, 골목에 갇힌 38%의 착시

1986년 시작된 빅맥지수 40주년...하루 9.6조 달러 금융 자본과 80% 비교역재 장벽에 무너진 일물일가의 법칙

리지

빅맥지수3분

Illustration by Gemini

1986년 9월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편집자 팸 우달이 내놓은 유쾌한 아이디어가 아니었더라면 환율 이론은 경제학 강의실에 갇혀 있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 햄버거 잣대는 지난 40년간 시장의 현실을 얼마나 제대로 설명해 왔을까.

빅맥지수는 1986년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복잡한 환율 이론을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려고 고안한 경제 지표다. 맥도날드 대표 메뉴인 빅맥의 각국 판매 가격을 미국 달러 가격과 비교해 특정 통화의 고평가와 저평가를 따져본다. 전 세계 어디서나 같은 규격으로 만드는 햄버거라면 국경을 넘어도 가격이 같아야 한다는 일물일가의 법칙을 햄버거 위에 올렸다. 환율 이론인 구매력평가설도 함께 얹었다. 장기적으로 환율은 두 나라 화폐의 실질 구매력이 같아지는 지점으로 수렴해야 한다는 전제였다. 참깨빵과 소고기 패티로 조립된 간이 저울이었다. 이 대중적인 저울은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대표적인 잣대로 자리 잡았다.

출범 40주년을 맞은 올여름, 이 대중적인 저울이 가리키는 성적표는 기대와 딴판이다. 7월 집계에서 한국의 빅맥 단품 가격은 5,700원, 미국은 6.22달러여서 구매력평가 이론대로라면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916원이어야 맞다. 하지만 실제 외환시장의 거래 환율은 달러당 1,480원 안팎에서 움직여 원화는 달러 대비 38%나 저평가된 화폐로 분류됐다. 지난 40년간 빅맥 저울이 가리킨 적정 환율이라는 눈금과 시장 가격은 단 한 번도 수렴하지 않았고 괴리 폭은 구조적으로 굳어졌다.

빅맥지수가 첫선을 보였던 1986년 무렵은 무역수지와 경상수지가 환율을 좌우하던 시대로, 컨테이너선에 상품을 실어 나르고 수출이 늘어 달러가 들어오면 통화가치가 오르는 실물 무역 중심의 거시 균형 모델이 작동했다. 당시 외환시장은 국경을 넘는 결제 창구였다. 만일 당시처럼 실물 무역만이 외환의 흐름을 지배했더라면 햄버거 저울의 예측은 맞아떨어지고 일물일가의 법칙도 힘을 얻었을지 모른다. 상품 교역이 시장의 중심에 서 있는 한 햄버거 가격의 격차는 환율 조정을 거쳐 언젠가 해소될 일시적인 괴리로만 남았을 것이다.

이제 다른 질문을 던져보자. 환율의 방향을 결정하는 엔진이 무역 항구에서 금융 자본의 모니터로 옮겨간 지금은 어떻게 될까. 하루 9조 6,000억 달러가 오가는 외환시장의 흐름을 실물 햄버거 저울만으로 가늠할 수 있을까. 국제결제은행(BIS)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연간 상품·서비스 교역액 30조 달러를 단 사흘 만에 거래해 치우고, 환율을 흔드는 주된 힘도 각국 국채 금리 격차와 주식시장 투자 자금, 안전자산 달러의 유동성 프리미엄으로 바뀌었으니 거대한 자본의 파도 앞에서 실물 햄버거 무게로 환율을 맞추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 됐다. 과거의 빅맥 저울이 환율을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은 실물 교역 중심의 무역 질서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금융 자본의 쏠림만 탓하려는 게 아니다. 국경을 넘는 식재료 원가만으로 햄버거를 설명할 수도 없고, 이동하는 무역재와 골목에 묶인 비교역재가 같지도 않다. 따지고 보면 햄버거 원가에도 80%의 비교역재가 들어 있어 따져보기 시작하자면 골목의 장벽도 만만치 않다. 쇠고기와 빵처럼 수입할 수 있는 식재료는 20% 남짓에 불과하고 매장 임대료와 직원의 인건비, 공과금이 80%를 차지하는 탓에, 발라사-새뮤얼슨 가설대로 각국 골목에 굳어진 부동산과 노동 비용의 격차가 일물일가의 기대를 허물어뜨렸다.

물론 각국의 소득 격차를 반영한 수정 빅맥지수를 쓰면 구매력평가설의 설명력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반론도 있다. 소득 수준에 맞춰 햄버거 가격을 회귀 분석하면 적정 환율을 찾을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는 직관적인 단일 상품 저울로 환율을 가늠하겠다던 본래의 간결함을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니 잣대의 독립성을 무너뜨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엔 사후적인 통계 보정에 그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소득과 생산성을 덧붙이는 순간 저울의 미덕은 사라진다.

이 구조적 괴리가 가장 뼈아픈 역설로 드러나는 곳이 한국 경제다. 빅맥 저울의 눈금대로라면 한국 소비자는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물가를 누려야 마땅한데, 현실의 장바구니는 왜 이리 팍팍하단 말인가.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식료품 물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5배 높았다. 반면 2분기 기준 한국 거주자가 외국 주식과 채권에 투자한 자금인 해외 증권투자 잔액은 1조 3,808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자본은 바깥으로 빠져나가 원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밥상 물가는 폐쇄적인 유통망과 높은 상가 임대료라는 비교역재의 벽에 갇혀 고공행진을 이어간다.

다음 분기에 눈여겨볼 지표는 두 가지다. 첫째는 한국은행 국제투자대조표상의 거주자 해외 증권투자 순유출 속도로, 금융 자본의 유출이 원화 가치를 얼마나 더 밀어내는지 가늠하는 잣대다. 둘째는 서비스물가지수 내 외식 물가와 상업용 부동산 임대동향으로, 환율 상승에 따른 수입 원자재 부담이 골목 상권의 2차 물가 상승으로 번지는지 확인해야 한다.

40년 전 영국의 한 편집자가 가벼운 마음으로 올려놓았던 햄버거 저울은 환율의 잣대로서 수명을 마쳤다. 하지만 그 실패는 헛되지 않았다. 참깨빵과 소고기 패티로 조립된 저울은 외환시장이 상품 교역의 균형점을 넘어 하루 9.6조 달러의 금융 자본이 오가는 유동성의 바다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유쾌했던 버거노믹스는 환율을 맞추지는 못한 대신 글로벌 외환시장의 일평균 9.6조 달러 거래와 한국 거주자의 1조 3,808억 달러 해외 증권투자 잔액이라는 두 숫자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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