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세상의 흐름

개미 구하려 높인 200만 루피 울타리, 쫓겨난 돈이 벌린 사각지대

인도 규제당국 옵션 진입장벽 4배 높였지만 손실률 88%...15년 전 韓 파생 건전화 실패의 데칼코마니

리지

파생상품 규제2분

인도 증권거래위원회(SEBI)가 8월 20일 발표한 파생상품 실태 보고서는 당혹스러운 성적표를 담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26회계연도에 주가지수 선물과 옵션을 거래한 개인 투자자의 87.7%가 순손실을 냈다. 이 참담한 수치는 규제당국이 투자자 파산을 막겠다며 진입 장벽을 세 배 넘게 높인 뒤 나왔다. 규제 강화로 참여자는 20% 줄었지만 돈을 잃은 사람의 비율은 그대로였다. 비율뿐 아니라 1인당 평균 손실액마저 11만 7,000루피로 소폭 늘어났다. 이 같은 역설은 서민을 보호하겠다며 시장 둘레에 친 높은 울타리가 정작 누구를 지켰는지 묻게 한다.

이 울타리를 세운 배경에는 인도 금융 중심지 뭄바이를 뒤흔든 거대한 투기 열풍이 있었다. 이 열풍을 타고 스마트폰 앱이 퍼지며 젊은 층이 당일 만기 옵션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적은 돈으로 수십 배를 쥘 수 있다는 환상이 퍼졌다. 그 결과 당국 조사에서 옵션에 뛰어든 개인 투자자 90%가 손실을 냈고, 수십조 원이 허공으로 증발했다. 피해가 커지자 인도 금융당국은 곧장 고강도 규제 카드를 꺼냈다. 그 대책으로 최소 계약금액을 200만 루피로 네 배 높였다. 진입 장벽을 높이면 무모한 참여자들이 스스로 물러설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이 장면은 15년 전 한국의 기억을 떠올리면 서늘한 기시감을 안긴다. 당시 금융당국도 코스피200 옵션 시장에 투기 광풍이 불자 기본예탁금 5,000만원이라는 장벽을 쳤다. 하지만 울타리가 투기를 없애지는 못했다. 장내 유동성이 마르자 기관투자자도 시장을 떠났고, 쫓겨난 소액 투자자들은 감독이 미치지 않는 불법 대여계좌와 가상자산 시장으로 옮겨갔다.

지금 인도의 성적표는 과거 한국이 겪었던 궤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계약 단위를 올리자 가난한 개인들은 계좌를 닫았지만, 남은 이들의 투기 성향은 도리어 거칠어졌다. 거래 규모가 커지자 한 번의 승부에 가진 돈을 전부 거는 극단적 베팅에 뛰어들었고, 1인당 평균 손실액은 줄지 않았다. 이 왜곡된 판에서 이익을 독식한 쪽은 고빈도매매(HFT)를 앞세운 외국계 기관투자자였다. 반면 쫓겨난 청년들은 전산망에 잡히지 않는 불법 사설 거래인 다바 트레이딩(Dabba trading)으로 발길을 돌렸다. 장내 시장 진입을 막아서자 위험은 통계 밖의 암시장으로 스며들었다.

물론 금융당국의 온정주의(paternalism)는 선의에서 출발한다. 지식과 자본이 부족한 청년들이 단기 고수익을 좇다 빚더미에 앉는 비극을 국가가 두고 볼 수는 없다. 취약한 투자자를 고위험 상품에서 떼어놓는 것은 감독기구의 오랜 책무이기도 하다. 보호라는 당위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투기의 수요를 행정명령으로 없앨 수 있다는 믿음은 위험한 착각이다. 투자자가 감당할 위험을 관청이 대신 결정하겠다며 진입 장벽을 높이면 시장은 보호받지 못하고 왜곡되기 십상이다. 장내 시장은 증거금과 청산 제도로 위험을 관리하는 투명한 공간이다. 이곳에 무리한 울타리를 치면 소액 투자자는 감독과 규율이 작동하지 않는 장외 사각지대로 밀려난다. 온정주의 울타리는 안에서는 판돈을 키우고 밖에서는 사람들을 낭떠러지로 밀어냈다.

앞으로 눈여겨볼 지표는 둘이다. 하나는 인도 당국이 발표할 장내 옵션 시장의 분기별 개인 참여자 수와 1인당 순손실 흐름이다. 계약 규모를 올린 뒤에도 1인당 손실이 꺾이지 않는다면 규제의 역설은 수치로 입증된다. 다른 하나는 사법당국의 불법 다바 트레이딩 단속 실적과 가상자산 시장으로의 자금 유입 규모다. 튕겨 나간 위험이 음지에서 얼마나 자라는지 가늠할 직접적인 기준이다.

인도 뭄바이의 규제당국 청사 정문에는 거래 요건을 알리는 공고문이 여전히 붙어 있다. 서울 여의도가 겪었듯 벼랑 앞에 높이 세운 울타리는 사람을 멈춰 세우지 못하고 더 깊은 골짜기로 밀어냈다. 인도 증권거래위원회는 8월 20일 개인 투자자의 연간 파생상품 순손실액을 91조 6,850억 루피로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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