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세상의 흐름

법정에 세운 투표함...멕시코 10년물 국채 금리 15개월 만에 최고

사법개혁 2년 만에 10년물 금리 9.5% 근접...재정적자 4%대 고착에 북미 공급망 투자 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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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국채4분

Illustration by Gemini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쿠아우테목구에 자리한 연방대법원 청사의 중앙 복도. 대리석 바닥 한쪽에 가로세로 반 미터 크기의 투명한 아크릴 "투표함"이 놓여 있다. 상단에는 뚜껑 중앙을 가로지르는 직사각형 투표용지 투입구가 길게 뚫려 있다.

법관의 법복과 판결문 대신 유권자의 표를 모으는 플라스틱 상자가 법원의 중심을 차지했다. 2년 전 오늘인 2024년 9월 15일,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멕시코의 국가원수였다. 그는 연방 및 주 법원 판사 전원을 국민 직선제로 선출하는 헌법 개정안을 관보에 공포했다.

사법개혁은 멕시코 사법부의 뼈대를 통째로 갈아치웠다. 11명이던 대법관 정원을 9명으로 축소하고, 전국 7,000여 명에 달하는 연방 판사와 치안판사를 국민 투표로 교체하는 일정에 돌입했다. 판사 후보 자격 요건은 법조 경력 시험 대신 학점과 추천서 위주로 대폭 낮아졌고, 정당과 행정부가 후보 추천위원회를 장악했다.

국가재건운동은 멕시코의 집권 정당이다. 이 정당은 부패한 엘리트 법관을 몰아내고 민주적 통제를 세운다는 명분을 걸었다.

이 변화는 지난 30년간 멕시코 경제를 지탱해 온 핵심 질서를 단숨에 무너뜨렸다. 30여 년 전 테킬라 위기 이후 멕시코가 채권 시장에서 살아남은 비결은 강력한 제도적 방화벽이었다. 독립성을 헌법으로 보장받은 중앙은행인 반시코가 통화가치를 지키고, 사법부가 행정부의 자의적 권력 행사를 막아서며 계약의 이행을 보장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법원이 재산권을 지켜줄 것이라 믿고 달러 자본을 맡겼다. 여기에 북미자유무역협정과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이 더해지며 멕시코는 미국 제조업의 핵심 공급망으로 편입됐다.

그러나 법정에 "투표함"이 들어서자 채권 투자자들은 일제히 멕시코 국채를 대거 처분했다. 멕시코 10년 만기 페소화 국채인 엠보노 금리는 지난 14일 연 9.47%까지 치솟으며 15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1년 전 가을 연 8.5% 안팎이던 국채 수익률이 1년 만에 1%포인트 가까이 뛴 것이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멕시코의 국가신용등급을 투기 등급 바로 윗단으로 강등할 수 있다고 잇달아 경고했다.

사법 불안 위에 얹힌 재정적자는 불길을 키웠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행정부 마지막 해였던 재작년 멕시코의 광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 대비 5.0%를 넘어서며 36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복지 지출 확대와 남부 철도 건설에 재정을 집행한 데다, 990억달러에 달하는 빚더미에 올라앉은 국영 석유기업 페멕스의 부실을 국고로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그해 10월 취임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은 적자 축소를 약속했지만 재정 압박은 풀리지 않았다. 멕시코 재무부는 올해 국내총생산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4.1%에 달하고, 국가채무비율은 올해 말 54.0%에서 내년 55.0%로 오를 것으로 추산했다.

시장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대목은 사법적 구제 제도의 무력화다. 멕시코 헌법이 170년 넘게 유지해 온 핵심 방패인 위헌심판청구, 즉 암파로 제도가 개정되면서 법원의 위헌 판결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일반적 효력이 소멸했다. 정부가 외국계 에너지 기업의 송전망 접속을 차단하거나 공기업을 부당하게 우대하는 법안을 밀어붙여도, 개별 기업이 소송을 통해 법 집행을 정지시키기가 불가능해졌다. 경쟁 당국과 에너지 규제위원회마저 정부 부처로 흡수되면서 독립적 조정자는 설 자리를 잃었다.

물론 멕시코 정부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멕시코 재무부는 국채 금리 상승이 글로벌 통화 긴축에 따른 신흥국 채권시장의 공통 현상이라고 반박한다. 미국 국채와의 스프레드는 여전히 과거 위기 수준보다 좁고, 대다수 신용평가사가 투자적격 등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사법부를 대중에게 돌려주는 개혁이 장기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단단하게 만들어 정치적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는 주장도 덧붙인다.

하지만 이 반론은 자본이 무엇을 사는지 오판하고 있다. 채권 투자자와 글로벌 기업이 국채와 공장에 수억 달러를 집행할 때 가장 먼저 따지는 조건은 계약의 불가역성이다. 판사가 유권자와 정권의 환호를 얻기 위해 선거 운동을 벌이는 순간 법정은 정치 유세장으로 변질된다. 외국 기업이 현지 공기업과 분쟁을 벌일 때 투표로 뽑힌 판사가 법조문 대신 표심을 선택할 것이라는 의심은 이미 국채 금리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제도적 신뢰가 무너지자 공급망 재편의 과실인 "니어쇼어링"의 흐름도 멈춰 섰다. 다국적 기업들은 멕시코 현지 공장 증설 계획을 잇달아 유보하고 관망세로 접어들었다. 실제로 멕시코 주요 산업단지의 신규 공장 착공 발표는 눈에 띄게 감소했다.

미국과 캐나다가 올해 무역협정 정례 검토를 앞두고 멕시코의 사법개혁이 협정상 투자자 보호 규정을 위반했다며 연례 관세 부과까지 거론했기 때문이다. 법의 지배가 흔들리는 공장은 무관세 혜택이라는 단맛마저 잃을 위기다.

이 거대한 균열의 청구서는 한국 제조업의 현장으로 날아들었다. 한국수출입은행 집계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대멕시코 직접투자 누적액은 73억달러를 넘어섰다. 기아는 누에보레온주 페스케리아 공장에 6억 4,900만달러를 들여 지난달 소형 전기차인 EV3의 현지 양산 라인을 가동했다.

페스케리아 공장의 연간 생산능력은 40만 대에 달하며, 70여 개 협력업체가 동반 진출해 있다. 삼성전자 티후아나 공장과 LG전자 몬테레이 전장 공장도 멕시코를 북미 수출의 전초기지로 삼고 있다.

하지만 멕시코가 누리던 우회 수출 거점의 지위는 안팎에서 흔들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1일 인터뷰에서 "중국 업체들이 멕시코에서 자동차를 싼값에 만들어 미국으로 보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공개 경고했다. 멕시코산 완성차에 대한 고율 관세 위협이 현실화하는 가운데 현지 사법 체계의 안전판마저 흔들리자, 한국 기업들은 법적 분쟁을 감당할 방어 수단 없이 관세 전쟁의 최전선에 노출됐다.

다음 분기에 눈여겨볼 지표는 둘이다. 첫째는 멕시코 10년물 국채 금리가 연 9.5% 저항선을 뚫고 두 자릿수로 올라서는지 여부다. 국채 수익률이 10%대에 안착한다면 시장이 멕시코 국채의 위험 프리미엄을 신흥국 부실채권 수준으로 다시 산정한 신호다.

둘째는 멕시코 의회가 차기 연도 예산안에서 제시한 재정적자 감축 목표인 국내총생산 대비 3.9%를 온전히 통과시키는지 여부다. 페멕스에 대한 추가 지원이나 복지 확대로 적자 폭이 다시 벌어진다면 국가신용등급 강등은 피하기 어렵다.

연방대법원 복도에 놓인 투명한 "투표함"은 당초 부패를 쓸어 담겠다는 약속을 앞세웠다. 하지만 그 상자는 지난 30년간 축적된 사법의 신뢰를 고스란히 집어삼켰다. 시장은 선거 유세로 채워진 법정을 신뢰하지 않으며, 흩어진 신뢰는 9.5%라는 국채 금리의 숫자로 되돌아왔다. 멕시코 재무부는 2026년 9월 8일 국내총생산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3.9%로 낮추겠다는 차기 연도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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