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흐름
33억 명 1인당 소득 반토막...성장 멈춘 사회의 잔혹한 "의자" 뺏기
10년 새 세 배 불어난 저성장 인구...한국인 생애 흑자도 33년에 멈춰
서울 중구 장교동 고용노동부 산하 취업지원기관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 1층 로비에는 파란색 플라스틱 대기 의자가 줄지어 놓여 있다. 순번 대기표 발권기 화면에는 대기 인원 87명이 떠 있고, 의자에 앉은 20대 청년과 60대 은퇴자는 말없이 번호표를 쥔 채 순서를 기다린다.
조사 대상 80개국의 33억 명이 저성장 국면에 들어섰다. 이 저성장 국면에서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지난 10년간 이전 10년의 절반 이하로 주저앉았다.
1인당 소득 감속은 국가 전체의 경제 성장률이 인구 증가를 앞지르지 못해 국민 개개인의 실질 소득 증가세가 둔화하는 현상을 뜻한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세계 경제는 새로운 "의자"가 해마다 늘어나는 공간이었다. 당시 냉전이 끝나고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무역과 투자가 국경을 넘어 뻗어 나갔다.
전 세계 인류의 1인당 소득은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실제로 인구 증가보다 경제 성장이 더 빨랐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남의 자리를 빼앗지 않고도 자신의 몫을 넓힐 수 있었다.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는 제도인 능력주의의 약속도 그랬다. 이는 팽창하는 1인당 성장의 토대 위에서만 성립했다. 교육을 받고 성실하게 일하면 부모 세대보다 더 나은 삶을 산다는 이런 믿음이 사회 전체를 지탱했다.
개인의 근면은 곧바로 소득 상승으로 이어졌다. 미래에 대한 낙관이 있었다. 이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가장 견고한 사회계약이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1인당 소득의 팽창 흐름이 꺾였다. 이는 숫자로 잘 드러난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가 분석한 세계은행 통계다. 이 통계에서 소득 성장률이 반토막 난 지역의 인구는 2014년 11억 명이었다. 이 인구는 올해 집계에서 33억 명으로 세 배 늘어났다.
전 세계 인류 5명 중 2명이 저성장 국면에 갇힌 셈이다. 이 가운데 7억 3,000만 명은 1인당 소득이 오히려 줄어드는 절대적 역성장을 겪었다.
이 불운한 저성장 클럽에 이름을 올린 곳은 개발도상국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중국과 브라질, 러시아에 더해 유럽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까지 합류했다.
제조업 강국 독일도 예외가 아니다. 실제로 독일의 1인당 실질 소득 증가율은 2004년부터 10년간 연평균 1.5%였다. 하지만 최근 10년에는 연 0.6%로 급락했다. 국경 안으로 들어오는 부의 총량이 독일 사람 수만큼 늘어나지 않았다. 결국 선진국에서도 삶의 질이 정체되기 시작했다.
1인당 성장이 멈추자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가장 먼저 무너진 것은 노력에 대한 믿음이었다. 이런 변화는 조사 결과가 보여준다. 미국 스탠퍼드대 산하 연구기관 중국경제연구센터가 중국 전역에서 20년간 추적 조사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력이 항상 보상받는다"는 명제에 동의한 중국인의 비율은 2004년 62%였다. 하지만 이 수치는 2023년 28%로 폭락했다.
20년 전 중국인들은 부유해진 비결로 개인의 재능과 노력을 꼽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부모의 배경과 연줄, 불공정한 경제 체제를 부의 첫째 요인으로 지목한다.
성장이 멈추면 빈 "의자"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이미 놓인 자리를 선점하거나 물려받는 일이 훨씬 중요해진다. 결국 성장의 정체는 능력주의를 허물고 세습과 줄서기를 부른다.
한국은 1인당 성장의 기적을 가장 온몸으로 통과한 나라였다. 실제로 1960년대 초반 1인당 소득은 100달러 안팎이었다. 이런 가난한 농업국가는 반세기 만에 3만 달러를 돌파했다.
부모 세대는 빚을 내 자식을 대학에 보냈고, 청년들은 일터에서 밤을 새우며 중산층의 삶을 일궜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면 반드시 더 나은 "의자"를 차지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이는 한국 사회의 가장 강력한 추진력이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1인당 성장 현실은 한계에 부딪혔다. 이는 국가데이터처가 17일 발표한 2024년 국민이전계정 통계에 잘 드러난다. 이 통계는 한국인의 경제적 삶이 얼마나 좁은 구간에 갇혀 있는지 보여준다.
한국인이 노동으로 버는 소득이 소비보다 많은 생애 흑자 기간은 28세에 시작해 61세에 끝났다. 결국 100세 시대에 흑자 인생은 단 33년에 불과했다.
그 흑자의 문턱조차 해마다 좁아지고 있다. 청년층의 취업 시장 진입이 늦어졌다. 이에 따라 28세 청년의 연평균 흑자액은 157만원으로 전년보다 49만원 줄었다.
노동 소득은 45세에 4,651만원으로 정점을 찍는다. 이때 흑자 규모는 1,932만원이다. 하지만 은퇴가 시작되는 61세가 되면 76만원의 적자로 돌아선다. 결국 단 33년 동안 번 돈으로 앞선 27년의 성장기와 은퇴 뒤 40년의 노후를 전부 메워야 한다.
반도체 수출 호조에 힘입어 올해 전체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3%대에 다가서고 있다. 하지만 국민이 일상에서 느끼는 온도는 싸늘하다.
사회적가치연구원이 17일 29개국 비교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에서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 순위는 13위였다. 반면 국민이 느끼는 경제 체감도 순위는 27위로 바닥권에 머물렀다. 다른 사람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 역시 조사 대상 22개국 가운데 21위에 그쳤다.
1인당 소득의 팽창이 멈추면 사회는 필연적으로 제로섬 싸움터로 변한다. 새로 들어갈 "의자"가 늘어나지 않는다. 결국 기존 자리를 차지한 세대는 빗장을 걸어 잠근다.
제조업 대기업 노조는 호봉제를 유지한 채 정년 연장을 요구하고, 기성세대는 부동산 자산의 문턱을 높인다. 이에 따라 청년층은 신규 채용 축소와 주거비 부담이라는 이중고를 떠안으며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기회를 잃는다.
물론 반론도 있다. 기술 혁신과 복지 확대로 이 교착을 풀 수 있다는 기대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노동 생산성을 끌어올리면 인구가 줄더라도 1인당 생산량은 다시 늘어날 수 있다는 논리다. 또 정부가 세금을 더 걷어 정교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면 성장의 둔화를 분배의 정의로 보완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첨단 기술 투자는 초자본집약 산업이다. 고용 없는 성장을 낳는다. 실제로 기술 혁신의 과실은 소수 빅테크와 자본가에게 쏠리고, 다수 노동자의 지갑으로는 흘러들지 않는다.
게다가 1인당 소득이 커지지 않는 정체 상태다. 정부가 복지를 늘리려면 누군가의 세금을 크게 올리거나 몫을 깎아야만 한다. 이런 상태에서의 재분배는 연대의 확장이 되지 못한다. 결국 세대 간의 가혹한 약탈전으로 귀결된다.
1인당 성장의 실종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양보와 타협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반면 성장이 이어지는 세상에서는 오늘의 양보가 내일의 더 큰 몫으로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성장이 멈춘 세상에서는 다르다. 이때의 양보는 곧 영구적 손실을 뜻한다. 전 세계적인 포퓰리즘의 득세와 보호무역 장벽, 세대 갈등과 극단적 대립이 그렇다. 이는 모두 1인당 성장의 문이 닫힌 사회가 내뿜는 증상들이다.
앞으로 이 구조적 균열의 진행을 확인할 지표는 세 가지다. 첫째는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집계할 주요국의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 증가율이다. 이 지표로 33억 명이 갇힌 저성장 클럽의 영토가 더 넓어지는지 살펴야 한다.
둘째는 국가데이터처 고용동향에서 20대 후반 청년층의 고용률과 첫 취업 연령이다. 이 연령과 고용률로 28세 흑자 진입 시점이 더 뒤로 밀리는지 확인해야 한다. 셋째는 정기국회에서 논의될 국민연금 모수 개혁과 계속고용 입법의 향방이다. 이를 통해 미래 세대와의 고통 분담인지 기득권의 자리 보전인지가 드러난다.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 1층에 놓인 파란색 대기 의자다. 이는 1인당 성장이 멈춰 선 사회에서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33년의 흑자 좌석이다. 이 좌석은 누군가가 비켜서지 않으면 앉을 수 없다. 결국 닫힌 "의자"의 현실을 증명한다.
국가데이터처는 17일 2024년 국민이전계정을 발표했다. 이 발표에서 한국인의 생애주기 흑자 구간은 28세부터 60세까지 33년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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