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세상의 흐름

"5년만 고정"도 고정금리...정부는 차주가 곧 이사한다고 봤다

만기 30년이어도 앞의 5년만 묶이면 고정금리...7월 신규 취급 비중은 31.9%로 12년 5개월 만에 최저

리지

고정금리 주택대출2분

금융위원회는 2015년 1월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구조개선 실적을 내놓으면서 무엇을 고정금리로 셀지 함께 밝혔는데, "5년 이상 금리가 고정된 대출"이면 고정금리로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만기가 30년이어도 앞의 5년만 묶여 있으면 통계는 그 대출을 고정금리로 센다.

공무원들은 그렇게 정한 이유도 적어 두었다. 장기 주택담보대출의 평균상환만기가 3.6년이고 사람들이 보통 6~8년마다 이사하니, 고정 구간 동안 금리가 오르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고정금리 성격"이라고 봤다는 것이다. 고정금리라는 말의 뜻이 차주의 이사 주기 위에 놓인 셈이다.

그 기준은 채워야 할 목표에서 나왔다. 정부는 2011년 가계부채 연착륙 종합대책에서 고정금리 대출 비중을 5년 안에 3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했고, 그때 비중은 5% 남짓이었다. 가계 빚이 거의 전부 변동금리에 얹혀 있으면 기준금리를 올리는 순간 수백만 가구의 이자가 함께 뛰기 때문에, 그 충격을 은행과 채권시장 쪽으로 옮겨 놓자는 뜻이었다.

숫자는 올라갔다. 은행은 창구에서 고정 구간 동안 금리를 묶고 그 뒤에는 시장 금리를 받아 다시 정하는 주기형을 팔았고, 정부는 2015년 봄 열흘 남짓 변동금리 대출을 고정금리 분할상환으로 바꿔 주는 안심전환대출을 내놨다. 한국은행 금융시장연구팀은 그 뒤 전체 가계대출의 고정금리 비중이 28.7%에서 33.3%로 올랐다고 적었다. 목표가 한 해에 요구하던 상승폭의 대부분을 열흘 남짓 팔린 상품 하나가 만든 것이다.

그러니 비중은 무엇을 고정으로 셀지 정한 기준 하나와 정부가 직접 갈아 끼운 물량 하나로 채워졌고, 차주가 창구에서 스스로 고른 대출은 그 사이에 있다. 목표치가 생기면 그것을 재는 자를 누가 쥐는지가 중요해지는데, 고정금리의 뜻을 정한 쪽과 실적을 점검하는 쪽은 같은 곳이었다. 무엇을 세느냐를 고르는 일은 장부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은 누가 위험을 지는지를 정한다.

전제부터 흔들렸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11월 낸 2024년도 주거실태조사에서 가구의 평균 거주기간은 8.4년으로, 공무원들이 적어 둔 이사 주기의 위쪽 끝을 이미 넘어섰다. 고정 구간이 끝나도 차주는 그 집에 그대로 있고, 집을 팔면서 대출을 정리하리라던 계산은 그 자리에서 멈춘다.

같은 말을 쓰는 다른 나라를 보면 차이가 뚜렷하다. 미국의 30년 고정은 만기까지 금리가 바뀌지 않아서, 값싼 금리를 받아 둔 차주의 청구서에는 그 뒤에 오른 금리가 닿지 않고 그래서 미국 집값은 금리 인상을 견뎌 냈다. 한국의 고정은 5년이고, 여기서 고정은 다음 재산정일까지의 유예를 뜻한다. 두 나라의 통계가 같은 낱말을 쓰는 동안 그 낱말이 가리키는 물건은 서로 달랐다.

올해는 그 5년 고정마저 팔리지 않는다. 장기 금리가 단기보다 빨리 오르면서 고정형과 변동형의 순서가 뒤집혔고, 차주들은 싼 쪽을 골랐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낸 7월 가중평균금리를 보면 새로 나간 주택담보대출의 고정금리 비중은 31.9%로 12년 5개월 만에 가장 낮았는데, 지난해 7월에는 64.8%였다.

행정지도는 그대로였고 상품도 그대로였다. 바뀐 것은 창구에 걸린 두 금리의 순서뿐인데 그 하나에 비중이 따라 움직였으니, 정책이 그대로인 채 결과만 바뀌었다는 사실이 이 비중의 성격을 말해 준다.

이미 나간 대출은 묶여 있고 잔액으로 세면 고정금리 비중이 아직 절반을 넘는다는 반론이 있다. 그러나 답은 그 잔액 안에 있는데, 잔액의 고정금리 가운데 만기까지 금리가 묶인 대출은 일부이고 나머지는 고정 구간이 끝날 때마다 새 금리를 받는다. 주기형을 고른 차주는 시간을 샀을 뿐이어서, 고정 구간이 이어지는 동안 청구서가 같고 그 뒤에는 그날의 시장 금리가 온다.

행정지도가 15년 동안 올려놓은 비중이 8개월 만에 반토막 났다면, 그 비중은 정책이 쌓아 둔 재고가 아니었다. 2015년에 공무원들이 적은 "실질적으로 고정금리 성격"이라는 판단은 이사 주기 위에 서 있었고, 그 주기는 8.4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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